
격한 환영 인사 속 등장한 정장 차림의 무리. 경직된 얼굴, 바쁜 발걸음으로 속히 이동했는데요. 그들 손에 들려진 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려권’이었죠.
북한 여자축구팀 ‘내고향여자축구단’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북한 스포츠 선수단이 한국을 찾은 것은 2018년 이후 8년만, 여자축구팀으로 좁히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인데요.
2025-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전 경기를 위해서였죠. 공항 입국장부터 경기장 관중석, 정부 지원 논란까지 이어진 장면들은 지금의 남북관계를 그대로 비추는 듯했습니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는데요. 통일부가 앞서 승인한 방남 인원은 선수 27명과 스태프 12명 등 모두 39명, 방남 기간은 17일부터 24일까지죠. 다만 4강전에서 패할 경우 결승전을 치르지 않기에 더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선수들은 짙은 남색 정복 차림으로 입국장을 빠져나왔는데요. 선수들은 정면만 보거나 바닥을 응시했고 검은색 백팩과 여행용 캐리어를 들고 있었고 한 손에는 여권을 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현장에 나온 환영단이 있었지만, 선수단은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빠르게 이동했죠.
바로 이 여권이 주목을 받았는데요. 남북 간 왕래는 일반적인 국가 간 입국 절차와 달리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방문증명서 발급을 통해 이뤄져 왔죠. 그런데 선수들은 방문증명서가 아닌 여권을 내밀었는데요. 이 장면은 최근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 맞물려 상징적으로 해석됐죠. 통일부는 앞서 북한 선수단이 여권을 제시할 경우 “실무적 차원에서 사진 대조의 보조 자료로 참고할 것”이라며 사증 스탬프를 찍는 식의 공식 심사 서류로 삼지는 않겠다는 취지로 선을 그었습니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대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렸는데요. 2012년 평양을 연고로 창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비재 기업 ‘내고향’의 후원을 받는 기업형 체육단으로 소개됐습니다. 2021~2022시즌 북한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리유일 전 북한 여자대표팀 감독이 팀을 지휘하고 있죠.
2025-20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수원FC 위민과 이미 한 차례 맞붙은 바 있는데요. 지난해 11월 미얀마 양곤에서 열린 조별리그 C조 경기에서 내고향은 수원FC 위민을 3-0으로 이겼죠. 수원FC 위민 입장에서는 이번 4강전이 단순한 남북 대결이 아니라 설욕전인 셈입니다.

경기 하루 전인 19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리유일 감독은 경기 외적 관심에 대해 “우리는 여기에 철저히 경기하러 온 것”이라며 “내일 경기와 앞으로 있게 될 경기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죠. 선수단을 대표해 나온 김경영도 “중요한 경기인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짧게 각오를 밝혔는데요.
수원FC 위민의 지소연은 내고향을 “북한 대표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력이 좋은 팀”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우리는 지난해와는 다른 멤버”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북한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를 언급하며 “상대가 욕하면 욕하고, 발로 차면 발로 차고 같이 대응해야 할 것 같다”고 각오를 전했죠.
이번 4강전은 20일 오후 7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단판 승부로 열리는데요. KBS1에서 단독 중계합니다. 대한축구협회 등에 따르면 12일 예매가 시작된 AWCL 준결승전 티켓은 판매 시작 약 12시간 만에 일반 예매분 7087매가 모두 팔렸죠. 이 경기 승자는 23일 같은 장소에서 멜버른 시티 FC와 도쿄 베르디 벨레자 경기의 승자와 우승컵을 놓고 맞붙습니다.

통일부는 남북협력기금관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3억원을 민간단체들의 응원 비용으로 지원하기로 의결했는데요. 경기 관람 티켓과 응원 도구 등 응원단 활동에 필요한 물품 비용이 포함됐죠.
그러면서 “일각에서 북한팀 응원 경비를 지원한다고 보도되고 있지만, 남북 간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해 남북 선수단을 모두 함께 응원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란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습니다. 공동응원단 규모는 총 3000명가량으로 AFC 규정에 따른 경기장 내 정치·종교적 메시지 표현 금지 등도 안내됐죠. 응원도구 역시 현수막, 응원수건, 응원막대, 양측 클럽기 등을 AFC 규정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활용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반면 아무리 직접 지원이 아니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공적 기금이 북한팀 출전 경기의 응원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쓰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 의견도 있죠. 특히 최근 남북관계가 군사·외교적으로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남북협력기금의 사용 우선순위가 적절하냐는 질문도 따라붙습니다.
앞서 북한 선수단이나 응원단의 방남 때 남북협력기금이 투입된 전례는 여러 차례 있는데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북한 선수단 362명과 응원단 288명 관련 비용으로 13억5500만원,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때 선수단 221명과 응원단 306명 관련 비용으로 8억9900만원,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때 선수단 20명과 응원단 124명 관련 비용으로 1억9600만원이 남북협력기금에서 집행됐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도 통일부가 남북협력기금에서 약 4억6000만원을 내고 나머지는 북한이 현금으로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규모가 더 컸는데요. 정부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남북협력기금 28억6000만원을 지원했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전해지는 묘한 분위기는 최근 몇 년 사이 북한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거친 태도나 인사 장면을 둘러싼 논란에 휘말린 전적 때문인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북한-일본전입니다. 당시 북한은 일본에 1-2로 패했고, 경기 중 거친 태클과 일본 스태프를 향한 위협적인 동작 등이 논란이 됐죠. 2025년 FIFA U-17 월드컵 북한-일본전에서는 북한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에게 주먹질하듯 하이파이브를 해 구설에 올랐습니다.
8일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2026 AFC U-17 여자 아시안컵 조별리그 한국-북한전 또한 비슷한 일이 벌어졌는데요. 한국 선수들이 심판과 악수를 한 뒤 북한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누려 했지만, 북한 선수들은 이를 받지 않고 지나갔죠. 17일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도 경기 전 북한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과 악수를 하지 않았고 경기 후에도 일본 선수들이 인사를 기다리는 사이 빠르게 빠져나갔는데요. 한국과 일본을 향한 북한의 현재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죠.
여러 해석과 논란이 따라붙었지만, 경기장 안에서 남는 것은 결국 축구인데요. 수원FC 위민은 홈에서 조별리그 패배를 갚아야 하고 내고향여자축구단은 북한 여자축구의 힘을 아시아 클럽 무대에서 증명해야 하죠.
다만 이번 경기가 평범한 축구 경기처럼 끝나기는 어려워 보이죠. 입장부터 인사, 경기 후 태도, 마무리까지 모든 것이 여러 의미로 해석되기에 충분합니다. 8년 만의 남북 체육교류와 국가 간 거리를 보여주는 경기, ‘묘한 분위기’의 마무리는 어떻게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