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 리스크 대응 확대…기업가치 훼손 사전 차단
배당·법 위반 이슈도 병행…주주가치 제고 요구 지속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강도를 높이는 동시에 기업과의 ‘조용한 대화’를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개적인 압박보다는 사전 협의를 통해 기업의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려는 시도가 늘어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운용 방식이 한 단계 진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과의 대화 건수(서한발신·비공개 면담 합계)는 259건으로 전년(248건) 대비 11건 늘었다. 대화 대상 기업 수도 147개에서 158개로 확대되며 접촉 범위가 넓어졌다. 국민연금이 말하는 ‘기업과의 대화’는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로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수탁자 책임 활동이다. 배당정책, 기후변화, 산업안전, 주주권익 침해 등 주요 사안에 대해 기업과 직접 의견을 교환하며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통상 비공개 면담(대화)으로 시작해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공개 대화나 서한 발송으로 수위를 높인다.
최근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비공개 면담’이 늘어난 점이다. 비공개 면담은 208건에서 240건으로 늘어난 반면, 서한 발신은 40건에서 19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대화는 늘렸지만 공개 압박은 줄이고, 물밑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진 것이다.
대화 의제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비공개 면담에서는 산업안전과 기후변화 등 위험관리 관련 논의 비중이 확대됐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 관련 면담은 6건에서 69건으로 급증했다. 이는 갑작스러운 이슈로 인해 기업가치 훼손 가능성이나 주주권익 침해 우려가 발생하면 국민연금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산업안전 관련 위험관리 논의도 확대됐다. 해당 의제는 14건에서 20건으로 늘어나며 ESG 중에서도 사회(S) 영역에 대한 관여가 강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배당정책 수립(11건→17건), 법령 위반 우려 사안(9건→11건) 등 주주가치 제고 관련 요구 역시 증가했다.
반면 일부 의제는 감소했다. 기후변화 관련 위험관리 사안은 29건에서 20건으로 줄었고, 지속 반대 의결권 행사와 연계된 논의도 13건에서 5건으로 감소했다. 이는 특정 이슈에 대한 반복적 문제 제기보다, 기업별 상황에 맞춘 선별적 대응으로 전략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의 견제와 사전 대화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개적인 의결권 행사로 압박 수위를 높이기 전, 비공개 대화를 통해 주요 의제를 사전에 조율하고 기업의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기업으로서는 공개적인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문제를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일부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주총에서의 찬반 표 대결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비공개 면담을 통해 사전 조율을 강화하는 흐름을 보인다”면서 “ESG 이슈까지 결합되면서 국민연금의 기업 관여 범위와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