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보조금이 문제 키웠다”…설치비 산정·검증 체계 ‘구멍’
“하드웨어 교체보다 소프트웨어 개선”…조기 교체 관행에 제동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과정에서 불거진 리베이트 논란과 요금 갈등 확산으로 시장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충전 인프라 구축은 필수적이지만, 지금처럼 이용자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양적 확대에서 질적 관리 중심으로의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2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수소차 포함) 420만대, 충전기 123만대 보급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현실은 크게 엇갈렸다. 충전기 보급은 목표치에 근접했지만 전기차 누적 대수는 90만대에 그쳐 당초 목표(200만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태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 회장은 현재 충전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정책 설계 실패에서 찾았다. 김 회장은 “충전기는 깔렸는데 전기차가 없으니 조금이라도 충전 수요가 있는 아파트 단지를 서로 차지하려는 경쟁이 과열된 것”이라며 “그 경쟁의 산물이 리베이트”라고 진단했다.
2018년 충전기 1대당 15만원 수준이던 영업 수수료가 현재 100만~120만원까지 치솟은 것도 과당경쟁의 결과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양적인 숫자를 늘리는 데 보조금이 집중됐다면 이제는 충전 사용률이 높거나 충전이 실제로 필요한 곳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불필요한 교체를 부추기는 제도적 허점을 지적했다. 신축 아파트에는 수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설치 기준이 그대로 적용돼 저가·구형 충전기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한 성능 저하와 유지관리 문제가 조기 교체의 빌미가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충전사업자들이 보조금과 영업비를 활용해 교체를 제안하면서 필요성이 크지 않은 충전기까지 조기 교체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kWh당 100원 수준의 요금 인상은 체감상 30% 이상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충전사업자가 설비 운영을 맡는 구조로 전환되면서 관리 편의성은 나아지지만 그 비용이 전기차 이용자에게 집중되는 구조적 불균형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과잉 교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이 교수는 충전기 교체 절차 법제화, 보조금 사후관리 강화, 충전요금 공개 의무화를 해법으로 제시하며 “장기적으로는 공동 충전 인프라 확대보다 개인 주차공간에 개별 충전기를 설치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효율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완속 충전요금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급속은 일정한 상한선이 있는데 완속은 최근 들어 가격이 많이 올라 입주민 불만이 커지고 있다”며 “아파트 중심의 완속에는 상한선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신축 아파트에 설치된 충전기를 2~3년 만에 무조건 교체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하드웨어를 통째로 바꾸기보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방식으로 개선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제가 불거진 뒤 업체만 탓할 게 아니라 충전기 설치비와 보조금 체계를 투명하게 만들고 완속 충전요금 규제와 안전 기준도 정비하는 등 정책 구조 자체를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