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장펀드 영향과 현장 평가, 정책펀드 보완점 [지상좌담]

앞으로 5년간 150조원을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에 투자하는 이재명 정부표 정책펀드가 본격화한다. 출범 20년을 갓 넘긴 모태펀드가 벤처 초기 모험자본의 마중물을 맡는다면, 국민성장펀드는 스케일업 엔진 역할을 할 전망이다. AI·바이오·로봇 등 첨단산업 글로벌 패권 시대에 정책펀드의 투자생태계 견인이 한국경제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본지는 10일 이준희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상근부회장, 박병건 PEF운용사협의회장,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총장,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 4명의 전문가 지상좌담을 통해 국민성장펀드 출범이 벤처 생태계에 미칠 영향과 현장 평가, 정책펀드의 보완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전문가들은 국민성장펀드 출범이 국내 벤처투자 생태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준희 상근부회장은 “민간 자본의 참여가 확대되고, 벤처기업의 핵심 회수 시장인 코스닥 시장까지 함께 활성화된다면, 한국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의 글로벌 경쟁력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민 사무총장도 “정부 자금 의존도가 높았던 투자생태계가 민간 중심 투자생태계로 전환하고, 그간 소극적이었던 모험자본 집행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과감한 집행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초장기·고위험 투자가 요구되는 딥테크, 대규모 설비나 인프라에 대한 투자병목이 획기적으로 해소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최근 발표된 배당소득 분리과세, 소득공제 혜택으로 민간의 자금이 벤처캐피털(VC), 사모펀드(PE) 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 통로가 확보돼 민간 참여가 유도될 것으로 관측했다. 다만 AI, 반도체 등 특정 전략 산업 위주로 자금이 쏠려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산정되는 등 시장 왜곡의 우려 가능성도 제기했다.
국민성장펀드 출자 및 대출 심사 과정에서 ‘전략 산업’, ‘메가 프로젝트’, ‘지역 사업’ 같은 키워드가 중요한 잣대가 된 데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이로 인한 일부 벤처기업들의 소외와 역차별 등 한계점도 제기했다.
이 부회장은 “국민성장펀드는 민간 자본의 참여를 전제로 하지만, 대규모 정책자금이 투입돼 국가 전략 산업과 지역 균형 발전을 고려한 기준 설정일 것”이라면서도 “민간 투자자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운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도 “정책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어 기업이 사전에 중장기 전략을 준비하고, 투자자는 적기에 모험자본을 결집할 수 있어 명확한 가이던스를 준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략 산업 분류에 들지 못하면 후순위로 밀리는 소외 현상이 있을 수 있고, 메가 프로젝트에선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은 수혜를 받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불가피하다. 지역 사업 기준으로 인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병건 회장은 “국민성장펀드는 전략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목적을 달성하는 동시에, PE 입장에서도 성장 산업에 투자해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목표와 시장 동기가 정렬되는 구조”라면서도 “메가 프로젝트나 지역 사업 기준에 대해서는 현 단계에서 체감하는 바가 크지 않아 구체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초장기 기술투자펀드’처럼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자금의 필요성에서 전문가들은 이견이 없었다. 이 부회장은 “초장기 기술투자펀드는 딥테크 기업의 육성에서 매우 실효적”이라며 “중요한 것은 투자 기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후속 자금이 계속해서 공급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무총장도 “국내 벤처펀드는 대체로 존속기간 8년에 최대 2년까지 연장하는 구조로 운용됐지만 딥테크 분야는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인내자본이 어느 분야보다도 필요하다”며 “예컨대 바이오 산업은 신약 개발과 임상 과정을 거쳐 시장에 진입하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돼 초장기 투자자금이 절실하다. 10년 이상 초장기 투자는 딥테크 기업의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필수 조건”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남재우 선임연구위원은 “벤처 육성을 위한 정책자금 투입은 반드시 장기 투자 시계(investment horizon)를 가져야 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10년 이상 투자 시계는 매우 적절하다”고 피력했다.
박 회장도 “국내 초기 기술투자 펀드는 통상 7~8년 내 회수 압박이 존재한다. 스노우플레이크처럼 장기 보유 시 수익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사례가 있지만 장기 성장의 과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라며 “투자 기간을 10~15년으로 늘리면 기술기업 성장 속도와 투자 기간 간 미스매치가 완화되고, 더 원활한 투자·지원이 가능해진다”고 짚었다.
해외 장기 전략 펀드와 비교할 때 한국 정책 펀드가 보완해야할 부분에 대해선 ‘독립성’과 일관된 ‘방향성’ 확보를 꼽았다.
이 부회장은 “해외 주요 국가의 장기 전략 펀드가 운용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민간 운용사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반면 국내 정책 펀드는 정권이나 정책 기조 변화에 따라 방향성이 흔들린다”라며 “단기 정책 목표에 따라 펀드 성격이 수시로 바뀌지 않도록 운용 원칙과 투자 방향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민간 LP(출자자)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체계를 강화하면 정책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 가능한 장기 전략 펀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사무총장도 “범부처 모태펀드 운영위원회가 정권과 관계없이 일관된 투자철학과 전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독립적 지위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큰 틀에서 정책 방향이 수립되면 자금운영은 철저히 시장원리에 따르도록 해야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자금 배분도 정치 영향력을 최소화해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4명의 전문가들은 앞으로 정책 펀드가 민간 자본을 유인하는 마중물을 넘어 ‘자금 조달 고도화’와 ‘해외 투자 유치’에 대한 적극적인 역할론에 한목소리를 냈다.
이 부회장은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테슬라는 상장 이후에도 성장 단계에 따라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면서 “기업이 성장 단계에 접어든 이후 민간에서 후속 투자를 이어갈 수 있도록 단계별 자금 조달 구조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코스닥 시장은 상장을 회수의 종착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해 상장 이후 자본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한다. 상장 이전부터 기업을 발굴·육성해 온 벤처캐피탈이 상장 이후에도 투자자로서 역할을 이어갈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사무총장도 “국내 전통 금융의 지속적 유인을 위해 강력한 세제 혜택과 손실우선충당 제도를 도입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통 금융은 투자 수익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어 혁신 벤처 금융으로 시선을 돌릴 만한 명분이 확보된다”라며 “또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정책 펀드의 일정 금액을 ‘해외 투자자금 매칭 펀드’로 설계해 한국 혁신 벤처 금융 영역을 글로벌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 회장도 “정책펀드는 해외 투자 유치로 확장되는 장(場)이 돼야 한다”라며 “3~4년이 지난 시점부터 해외 연기금 등 글로벌 자금이 국민성장펀드에 매칭 형태로 들어올 수 있도록 ‘후속 자금 유입 구조’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5년짜리 프로그램이 종료된 이후에도 성과가 확인되면, 해외 자금이 “매칭하겠다”고 참여할 유인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남 선임연구위원은 “정책펀드의 역할은 시장의 영구적인 견인이 아니라 민간자금 유입의 마중물임을 분명히해야 한다”며 “하방위험은 정부가 부담하고, 상방 수익기회는 민간에 제공하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재정 지원을 도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