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형 땅꺼짐 사고는 지반의 ‘쐐기형 불연속면’과 지하수위 급락, 노후 하수관 누수가 겹치며 발생한 ‘복합 붕괴’였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자연적 지질 특성과 과거 공사·관리 부실이 뒤엉켜 책임 주체는 명확히 특정되지 않았다.
3일 국토교통부와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3월 24일 강동구 명일동 동남로에서 발생한 땅꺼짐 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사고는 왕복 6차로 도로 중앙부가 가로 22m, 세로 18m, 깊이 16m 규모로 한꺼번에 내려앉으면서 차량 2대가 추락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사조위는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설계·시공 단계에서 충분히 파악되지 않았던 심층 풍화대 지반의 ‘쐐기형 불연속면’이 지하수위 저하와 하수관 누수로 약화되며 미끄러져 내려간 것”이라고 밝혔다. 쐐기형 불연속면이 붕괴하면서 터널 주변 지반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고 이로 인해 터널에 설계하중을 넘는 외력이 작용해 최종적으로 터널 붕괴와 지표 침하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과거 공사와 노후 인프라의 영향도 더해졌다. 사고 지점 인근은 기존 세종–포천 고속도로 13공구 터널 공사로 인해 지하수위가 크게 떨어진 지역이다. 사조위에 따르면 2017년 고속도로 설계 당시 지하수위는 지표면에서 3.1~6.9m 수준이었지만 2022년 도시철도 9호선 4단계 설계에서는 18.9~25.5m까지 내려간 것으로 조사됐다. 약 18m 이상 지하수위가 낮아지면서 지반 내 응력 분포와 안정 상태가 변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도로 하부를 지나는 노후 하수관 관리 부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하수관은 2022년 실태조사에서 균열과 이음부 단차 등이 확인됐지만 보수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됐고 지속적인 누수가 지반을 약화시켜 붕괴 위험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공법 선택 문제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명일동 인근은 심층 풍화대와 지하수 변화에 민감한 구간으로 사고 이전부터 쉴드TBM(Shield TBM) 같은 비배수식 공법 도입 필요성이 기술진 사이에서 거론돼 왔다. TBM은 굴진면을 밀폐해 지하수와 토사의 유출을 줄여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인준 사조위 위원장은 “이번 사고의 경우 지반 구조 자체가 매우 특이하고 쐐기형 불연속면이 지하수 변화와 누수에 취약한 상태였다”며 “단일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여러 요소가 동시에 영향을 미친 복합 사고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사조위 권고를 토대로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했다. 도심 비개착 터널 지반조사 기준을 새로 신설하고 심층 풍화대 구간의 조사 간격을 50m 이내로 줄이는 등 지반조사 설계기준(KDS)을 개정한다. 지하수위 급변 방지를 위해 지하안전평가서 표준매뉴얼도 개정해 누적 수위저하 대응 기준을 세분화한다.
쉴드 TBM과 같은 밀폐형 공법 적용도 권고 사항에 포함됐다. 심층 풍화대 구간에서 상·하수관 등 지하시설물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3열 중첩 강관보강 그라우팅 등 강화된 보강 공법 적용도 권고된다. 굴착 전·후 두 차례의 지반탐사 의무화와 지하시설물 관리기관의 탐사 주기 단축 등 관리 기준도 강화된다.
다만 이번 조사위 조사 결과에서는 사고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 특정하지 않았다. 9호선 4단계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관련해서도 굴진면 측면전개도 미작성, 지반 보강재 주입공사 시방서 미흡 등 절차적 위반 사항만 적시됐을 뿐, 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세종–포천 고속도로 시공사인 태영건설과 하수관 관리 주체 역시 사고 책임의 주된 당사자로 특정되지 않았다.
박 위원장은 “이번 사고는 자연적 지질 구조와 인프라 노후화, 시공 과정의 일부 미흡이 중첩된 복합적 사고”라며 “쐐기형 블록 지반이 아니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지질적 요인의 비중을 강조했다.
김태병 국토교통부 기술안전정책관은 책임 문제에 대해 “행정처분은 건설산업기본법상 소관 기관인 서울시가 판단하게 된다”며 “이번 사조위 조사결과를 관계부처 및 지자체에 즉시 통보하여 생정처분 수사 등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조사위 발표가 지질 취약성과 노후 하수관 등 복합적 요인을 제시했지만 책임 주체를 특정하지 않은 만큼 재발 방지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사 과정에서의 보강·관리 적정성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우려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본지 자문위원)는 “지질이나 관로 문제만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연약지반에서의 보강·차수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책임과 재발 방지 대책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