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10년만에 적자, 구조적 문제로 인식…“신사업 추진 기존CEO가 낫다”
‘구관이 명관(?)’. 올해 주요 증권사들의 대표이사 선임 배경은 이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통상 기업은 실적에 문제가 있으면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통해 분위기 상승을 꾀한다. 하지만 올해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증권업계 상황을 감안해서 그동안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CEO들은 대부분 그대로 기용하기로 결정한 증권사들이 대다수다. 구조조정 등 어수선한 조직 분위기를 수습하고 인수·합병(M&A) 등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경영진이 최적이라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신한금융투자다. 신한금융투자는 강대석 사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한 회장 취임 이후 일관되게 강조해 온 성과와 역량에 따른 인사철학을 고려해 시행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임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된 것이 강 사장의 경영능력이다. 강 사장은 1988년 신한증권에 입사해 오랜 기간 업계에 몸담은 베테랑 증권맨 출신이다. 지난 2012년 취임 이후 사업모델 전환을 통해 호실적을 기록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밖에도 하이투자증권 서태환 사장, 메리츠종금증권 김용범 사장, 동부증권 고원종 사장, 교보증권 김해준 사장 등이 연임했다.
증권사 CEO들이 대거 연임된 데 대해 업계 안팎에서는 증권사의 실적 악화가 개별기업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인식이 공유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 회계연도(4~12월·회계연도 결산월 변경) 기준 국내 62개 증권사는 109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순이익 7877억원을 거뒀는데 올해 적자로 돌아섰다. 증권사가 적자를 낸 것은 지난 2002 회계연도 이후 10년 만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장 교체를 단행해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보다 안정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수장이 교체되면 신사업 추진 등 사업의 연속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업황 침체에 따른 구조적인 부진으로 CEO에게 특별한 귀책이 없다고 인식이 커지면서 CEO 연임에 힘을 실어줬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경우 증권사 CEO가 특별한 귀책이 없을 경우 10년가량 연임하는 경우도 있다”며 “국내 증권사도 사업의 통일성과 연속성 측면에서 단임에 그치는 CEO의 임기를 좀 더 길게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증권사 사장들의 연임 트렌드가 지속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올해 연임된 CEO들은 불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중책을 안고 있는 만큼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다음 인사에는 연임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1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 받은 일부 CEO들은 안정적으로 경영능력을 펼칠 수 있겠지만, 1년 연임 CEO들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해 연임이 어떻게 될지 두고봐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