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한 고위 임원은 ‘계열사 효율화 작업’ 지시를 받고 지난 2010년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팀 책임을 맡으면서 계열사 현황을 따지고 계열사 분할 작업도 추진했다. 그러나 공정위원장의 말 한 마디에 현재 팀 업무는 전면 중단된 상태. 수직계열화 차원의 업무 추진이 ‘일감 몰아주는 부당거래’로 오인됐기 때문이다.
새 정부 들어 이런 일은 흔하다. 정부의 말 한 마디, 정책 하나에 기업은 쉽게 흔들린다. 정치권과 행정부가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다. 과도한 충성심도 이같은 오류를 부추겼다. 청와대 역시 정치권의 앞선 행보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잘못된 해석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국 산업성장의 근간인 ‘수직계열화’ 까지 일감 몰아주기로 오인하면서 재계의 우려는 깊어진다.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4월 말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는 효율성 측면 등 긍정적인 점도 있지만 더 나은 장점을 위한 가능성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 발언 이후 기업분할이나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수직계열화 작업 대부분을 중단했다. 조용히 추이를 지켜본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수직계열화’는 기업이 원료에서 부품, 완제품까지 일관된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경영전략이다. 반도체로 성장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만들고, 현대차는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라는 모토를 지닌다.
SK의 전신인 선경그룹은 수직계열화를 처음 내세워 가장 큰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선경은 섬유에서 시작해 화학과 원유 등으로 계열사를 꾸렸다. 오늘날 SK그룹이 탄탄한 기틀을 잡은 것도 이러한 수직계열화에서 시작한다. 한 마디로 수직계열화는 ‘선택하고 집중’하는 경영전략이다.
그러나 수직계열화가 ‘일감 몰아주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성공모델’로서의 역할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재계는 수직계열화를 통한 내부거래를 모두 부당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오인하는 데 대해 억울해하고 있다. 모든 내부거래를 일괄적으로 규제할 경우 기업들의 분할, 인수합병 등을 통한 성장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들의 수직계열화에 의한 내부거래마저 부당거래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각 기업의 부당 내부거래는 당연히 도마 위에 올려야한다. 그러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분사와 수직계열화는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
최근의 흐름은 ‘선택’하고 ‘집중’해서 성장한 기업들에게 성장 발판을 버리라는 것과 다름 없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지 못하고, 경영 효율화도 발목이 잡혔다. 누가 이 상황을 책임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