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강의를 들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내용이 수요와 공급 곡선이다. 상품의 가격이 싸면 많이 사지만 가격이 비싸지면 적게 사는 우리의 일상 행동이 그래프로 그려지는 것도 신기하지만, 매끄럽고 우아한 곡선의 형태로 표현된다는 점은 경탄할 만하다.
실로 수요곡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곡선이 그냥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미학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비현실적 가정들이 설정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합리성이 완전해야 한다는 가정이 포함된다.
특히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경제적 원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나아가 수요자와 공급자는 정보의 양은 물론 소득이나 자본의 규모, 그리고 정치권력의 측면에서 같아야 한다. 곧 경제적 행위자들은 모든 면에서 ‘동질적’이라고 가정된다. 다시 말해 모두는 ‘평등한’ 주체들이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며 평등한 수요자와 공급자는 모두 아름다운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그 결과 두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바로 ‘균형가격’이 결정된다. 균형가격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형성되었다. 균형가격 아래서 자원은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그 가격은 평등한 수요자와 공급자의 합리적인 계산에 따라 결정되었다. 같은 가치로 교환되는 이른바 ‘등가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수요자와 공급자는 모두 만족한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수요공급 이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게 아름답고 행복하다. 이 경제학자들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다. 시장은 효율적일 뿐 아니라 정의로우며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최선의 체제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적이다.
과연 그럴까? 인간의 합리성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선 최고의 인력과 컴퓨터장비, 그리고 최대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국책연구기관의 경제 전망치가 한 번도 적중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아름다운 곡선은 물론 균형가격도 형성될 리 없다. 그렇게 형성된 가격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리 없다.
나아가 상품에 대한 수요자와 공급자의 정보량은 결코 같지 않다. 정보는 물론 기술의 측면에서 공급자는 수요자를 항상 한발 앞선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등가교환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다. 시장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공급자들 사이에도 다른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기업의 규모는 가장 쉽게 발견되는 다른 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자본 규모의 차이는 경제적 차이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의 차이로 질적 변환을 겪은 후 기업 사이에 ‘정치적’ 관계를 유발한다. 정치적 요인이 개입되면 불공정 거래로 표현되는 ‘부등가 교환’이 일어난다. 경제적 거래관계에 정치적 폭력이 행사된 결과다. 그 결과 한쪽은 행복하겠지만 다른 한쪽은 눈물과 탄식으로 밤을 지샌다.
시장의 현실은 이처럼 아름답지도, 효율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정의롭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그것은 정보력, 자본 규모, 정치권력이 다른 ‘갑을관계’의 체제다. 그 때문에 군나르 뮈르달은 “시장이 존재하기 오래 전에 교환거래는 권력의 법칙에 종속”되었으며 막스 베버도 시장이 확립되어 있을 경우, “최적 이윤생산은 상이한 계급들 사이의 권력관계에 의존할 것”이라고 설파하였던 것이다. 현실 시장은 방망이가 필요한 체제다!
이러한 시장 현실과 위대한 학자들의 빛나는 통찰력을 접하고서도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그들의 모형을 막무가내로 고수한다. 완전한 합리성, 경제적 인간, 동질적 행위자 등 비현실인 가정으로 폭력적인 갑을관계를 숨겨주는 이들의 충성심은 불의한 강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 경제민주화의 방망이를 거두어야 한다고 충고한 박근혜 대통령도 매우 사랑스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