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불신의 늪]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매수’만 외치는 애널리스트

입력 2013-04-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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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비중축소’ 부정적 의견 내면… 기업들 탐방 거부 등 불이익 행사

국내 증시에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개의 기업(업종) 분석 리포트가 쏟아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포트는 ‘매수’ 일색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20% 가까운 ‘매도’ 리포트가 나오는 것과 대조적이다. 투자자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역시 나름의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꿈의 직업으로 분류되던 ‘애널리스트’가 최근에는 여기저기 눈치보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본업인 기업분석보다는 영업맨으로 전락하면서 기관, 영업점, 기업,개인투자자 등 각 투자 주체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게 됐다.
◇운용사·기관 눈치보기 바뻐

애널리스트의 기본 임무는 누구의 간섭도 없이 객관적 입장에서 기업을 분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부 기업은 자기 회사에 조금이라도 안 좋은 내용의 보고서가 나올 경우 애널리스트에게 항의나 협박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후 탐방 등을 거부하는 일이 다반사다. 여기에 자신이 투자한 종목에 안 좋은 의견을 내놓을 경우 일반투자자들의 협박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최근 업계의 현황 상 애널리스트들은 운용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애널리스트들이 분석 능력이 떨어지고 주가조작 루머에 내몰리는 것은 과도한 ‘영업경쟁’이라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증권사는 자산운용사가 증권사 창구를 통해 주식을 거래할 경우 수수료를 받는다. 때문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주요 고객인 운용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속한 증권사와 거래하는 운용사가 보유한 주식과 업종에 대해 매도나 비중 축소 같은 투자 의견을 내는 것이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같은 극심한 업황 불황에 운용사가 거래금액을 줄이면 증권사 입장에서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에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매도 의견을 내면 해당 종목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의 항의가 빗발치는 것도 문제지만, 자산운용사 등 기관에서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더 무섭다”고 말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애널리스트가 주식마케터로 전락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최근 열풍처럼 불고 있는 언론사들의 베스트 애널리스트 평가 역시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애널리스트 심사를 하면서 펀드매니저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한다.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선정되면 연봉이 오르기도 하고 커리어로 작용해 이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은 심사위원인 펀드매니저들에게 잘 보여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선정될 수 있도록 공을 들인다.

한 애널리스트는 “기업분석보다는 펀드매니저한테 잘 보여 영업을 잘하는 게 좋은 애널리스트로 평가받은 지 오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매수’ 일색 리포트, 이유가 있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기업과의 관계에서도 ‘을’의 위치에서 휘둘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의 눈치를 보다 보니 자연스레 냉정한 분석이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권사의 기업분석 리포트 가운데 ‘매도’ 의견을 낸 것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심지어 현재 주가보다 낮은 목표주가를 제시하면서도 투자의견은 ‘매수’를 제시한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은 2011년에도 마찬가지다. 2011년 역시 종목 리포트 가운데 매도 의견을 낸 리포트는 단 1건에 불과했고, 올해 들어서도 이제까지 매도 의견은 단 1건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구조적으로 국내 증권사 대부분이 주식 위탁매매 수수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애널리스트가 담당 종목에 대해 ‘팔라’는 얘기를 하기가 어렵다. 당장 증권사 지점의 영업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비중 축소’나 ‘매도’의견을 내면 해당 기업에서는 다음부터 아예 그 애널리스트만 탐방을 받아주지 않아 앞서 분석을 내놓는 다른 증권사에 정보력이나 영업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대형주일수록 의견을 부정적으로 제시하면 기업 탐방에 애로가 발생하거나 정보 획득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는 경우가 생긴다”며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반면 해외의 경우는 다르다.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미국의 경우 대부분 애널리스트의 업무가 아예 영업과 기업분석으로 나뉘어 있다.

영업을 맡은 애널리스트는 담당 클라이언트를 통해 오는 투자 성공 여부가 중요하고, 기업분석 애널리스트는 본업인 산업동향 예측과 기업분석을 잘하는 게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처럼 일정 비율 매도 의견을 의무화하는 시스템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또 더 근본적으로 주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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