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용의 머니전쟁 ]‘매도’ 의견 보고서 어디 없나요

입력 2013-03-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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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나 해당 기업의 격앙된 반응을 무시하기 쉽지 않다. 특히 주식 담당자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정보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고 이것은 애널리스트의 정보력과 경쟁력의 부재로 인식되는 만큼 솔직히 피하고 싶다.”

‘매도’ 의견 보고서를 내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한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답변이다.

애널리스트는 신의 영역, 즉 주가 맞추기에 도전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시장에 내놓는 보고서를 토대로 실제 많은 기관과 증권사 지점, 그리고 개인들이 투자에 나서는 만큼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꽤 크다. 해당 종목에 대한 ‘매수’, ‘중립’, ‘매도’ 등 투자의견을 제시하고 6개월이나 12개월 목표 주가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중립’ 투자의견은 실제 증시에서 통용되는 의미는 단어상 의미와는 차이가 난다. 거의 대다수 보고서의 의견이 매수인 만큼 투자의견 중립은 사실상 주식을 팔라는 의미로 통한다.

증권사들은 해당 기업과 투자자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매도’ 의견 내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보고서의 90% 이상이 ‘매수’를 외친다.

실제 지난 2012년 36개 증권사들의 투자의견 2만5958건 가운데 매도 의견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 반면 ‘강력매수’를 비롯한 매수 의견은 전체 보고서의 약 82%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8년간 매도 의견은 연간 평균 10건을 넘지 않고 있으며 갈수록 그 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목표주가는 ‘어닝 서프라이즈’면 올리고 ‘어닝 쇼크’라면 매수에서 목표가를 낮추는 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8년 4분기 삼성전자 실적발표 이후의 증권사들의 보고서를 보면 이해가 쉽다.

당시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손실은 9400억원으로 증권사들의 추정치 4000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어닝쇼크였다. 하지만 직후 증권사들이 시장에 배포한 보고서 24건 가운데 매도의견은 단 한건도 없었다.

애널리스트들도 할 말은 많다. 자칫 매도의견을 냈다가 기업과 투자자들로 부터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해당기업과의 관계 악화는 정보가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직업의 특성상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도’ 의견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 때문에 매도의견을 ‘매도’라고 부를 수 없는 일은 국내 증시의 관행처럼 굳어진 상황이다.

현실적인 고민을 인정해도 ‘매수’ 일색의 보고서가 투자자에게 독이 되고 있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가뜩이나 위축된 업계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금융산업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소위 용기 있는 ‘매도’ 보고서가 절실하다.

증권사 보고서는 단순 투자의 참고 자료일 뿐 맹신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투자손실에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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