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생은 울고, 홍명보는 정색…축구협회의 엉망진창(?) 민낯 [이슈크래커]

입력 2024-09-25 17:52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이임생(왼쪽)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연합뉴스)

질책, 눈물, 부인, 그리고 의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현안 질의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문체위는 24일 오전 전체 회의에서 체육계 관계자들을 불러 현안 질의에 나섰습니다. 대상은 대한체육회와 축구협회, 그리고 대한배드민턴협회였는데요. 여야 할 것 없이 질의를 쏟아냈습니다.

그중에서도 집중 공격을 받은 건 축구협회입니다. 그간 대한민국 체육계의 논란을 독식(?)해온 만큼 매서운 비판이 이어졌는데요. 부실한 자료 제출을 지적당하거나, 얼버무리는 답변으로 슬쩍 넘어가려다가 고성이 나오기도 했죠.

이 과정에서 맹타당한 인사가 울먹이며 돌연 사퇴를 선언하거나 논란에 대한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등 모습으로 한숨을 자아냈는데요. 어수선한 축구협회 분위기에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을 진행 중인 우리 선수들에게 악영향이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명보 선임, 공정했나?"…여야 합쳐 축구협회 맹타

이날 현안 질의에서 문체위 의원들이 일제히 질타한 부분은 홍 감독의 선임 과정 논란입니다.

앞서 홍 감독은 7월 초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홍 감독의 내정 소식이 전해진 직후 곳곳에서 '선임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죠. 팬들뿐만 아니라 축구협회의 전력강화위원회 내부에서도 공정성 문제가 거론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습니다.

두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논란은 식지 않았는데요. 문체위 의원들은 특히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감독 선임의 전권을 위임받은 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11차 회의의 절차적 정당성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감독 선임 작업을 이끌던 정해성 당시 전력강화위원장은 홍명보·다비드 바그너·거스 포예트 감독 등 세 명을 정몽규 축구협회장에게 추천하면서 그중 홍 감독을 적임자로 지목했습니다. 이후 정 위원장은 돌연 사임했고, 정 회장의 뜻에 따라 이 기술이사가 감독 선임 과정을 마무리 지었죠.

축구협회에 따르면 6월 30일 온라인으로 열린 11차 회의에 이 기술이사와 박주호 해설위원 등 5명의 전력강화위원이 참석해 이 기술이사가 감독 선임 후속 작업을 이어가는 것에 전원 동의했다고 합니다.

여야 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데 뜻을 모아 강도 높게 질책했는데요.

일단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인으로 참석한 정 회장을 향해 "회장이 무슨 자격으로 전권 위임을 하나"라며 "김정배 축구협회 상근 부회장도 (11차 회의는) 자격이 없는 불법 회의였다고 얘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11차 회의도 불법이고, 이 기술이사가 위임받은 부분도 불법이고, 그 불법의 토대 위에서 서류 제출도 안 하고 사전 면접도 안 하고 (감독 맡아달라고) 설득한 홍 감독이 감독으로 선임됐다. 이거 불법인가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죠.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기술이사에게 전력강화위원회 업무를 병행토록 한 것이 축구협회 정관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면서 "(축구협회가) 동네 계 모임이나 동아리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홍 감독 선임 이후 열린 이사회 안건, 결정 사안 어디에도 이 기술이사에게 전력강화위 업무 일부를 위임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짚었습니다.

이 기술이사가 홍 감독을 선택한 뒤 다른 전력강화위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도 문제로 거론됐는데요.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권한 위임은 감독 후보들에 대한) 면접에 한해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지, 면접하고 최종적으로 후보를 선임한 이런 것까지 위임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죠.

사실상 홍 감독이 선임되도록 몰아가는 식으로 전력강화위 회의가 진행된 게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습니다. 전력강화위는 투표로 감독 최종 후보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때 홍 감독, 바그너 감독이 나란히 7표를 얻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홍 감독이 최다 추천을 받은 건 아니지 않나. 최다라는 건 한 명을 말하는 것"이라며"홍 감독을 염두에 두고 한 과정이 아니라면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의문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정해성 전 위원장은 "(정 회장에게) 2명이 같은 7표로 받아 동표가 나왔다고 말씀을 드렸다"고 해명했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앞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연합뉴스)

사퇴 발표한 이임생 vs 선 그은 홍명보 vs 일단 넘어간 정몽규

이날 질의는 10시간 가까이 진행됐습니다. 질의 말미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기술이사가 전력강화위원 A 씨에게 'XX 기자에게 제가 최종 결정하겠다고 전화드리고 동의받은 부분만 컨펌해 주면 됩니다'라고 요청하는 카카오톡 캡처 화면을 공개했는데요. 여기에 A 씨는 "저는 제외하고 진행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했죠.

이는 이 기술이사가 마지막으로 남은 5명의 전력강화위원들로부터 최종 결정에 대한 위임을 받은 뒤 외국인 감독 면접 및 홍 감독 선임 등을 진행했다는 기존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입니다.

민 의원은 해당 내용을 근거로 '사후 회유' 의혹을 제기했고, 이 기술이사는 분명히 동의받았다고 강변했습니다. 그는 이후 발언권을 요청, 울먹이면서 "내 명예가 달린 일이라… 내가 사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협회 기술발전위원장을 맡았던 이 기술이사는 5월 말 협회의 기술 분야의 방향을 결정하는 최고직인 기술총괄이사로 취임했는데요. 감독으로서 프로축구 수원 삼성을 이끌던 2020년 7월에도 팬, 구단 측과 마찰 끝에 아쉬운 마음으로 지휘봉을 놓은 바 있습니다. 이날 문체위 위원들에게 절차적 정당성을 추궁당한 끝에 축구 행정가로서도 다소 멋없게 협회를 떠나게 된 셈입니다.

반면 홍 감독은 선임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에 "이 문제를 가지고 감독직을 사임할 생각이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 막판 행정적인 '착오'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선 시인했지만, 전반적인 절차는 정당하게 진행됐다는 입장이었죠.

홍 감독은 "그동안 회의록을 보지는 못했는데, 여기(국회)에서 회의록을 듣고 봤다. 개인적으로는 10차까지는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11차에서 행정적인 착오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력강화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임명장이라든지 행정적인 절차가 없었다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10차 전력강화위원회까지 위원들의 발언이나 전력강화위의 역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자신의 선임 의혹에 대해서는 "내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면, 불공정하거나 특혜가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 "나는 전력강화위에서 1순위 후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직을 받았다. 혹시 2~3순위였다면 난 감독직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죠.

정 회장도 이 부분에 대해선 "사실상 10차 위원회에서 감독을 추천했고, 과정에서 위법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는데요. 그는 이날 협회장 4선 도전에 대한 질타까지 받았습니다. 2013년부터 축구협회를 이끌어 온 정 회장은 올해로 세 번째 임기를 마치지만, '4연임 도전'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온갖 잡음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정 회장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이 해결되지 못한 상황인데요. 정 회장은 "내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도록 하겠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최근의 행보가 4선 도전을 위한 행보라는 지적에는 "내 모든 축구 관련 활동이 연임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며 "결국 역사가 평가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아리송한 답변을 내놨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월드컵 예선 코앞인데…국정 감사까지 '첩첩산중'

이날 축구협회 측 인사들은 논란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습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요구한 공통자료 129건 중 절반 이상은 제대로 된 답변이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죠. 어물쩍 넘어가려다 고성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양문석 의원이 11차 전력강화회의록을 들고나와 정 회장에게 "11차 임시회의가 있었느냐"고 물었고, 정 회장이 "11차는 없었다"고 답하자 "제가 지금 들고 있는 게 11차 전력강화위원회 회의록. 제가 들고 있잖아요. 지금"이라고 크게 호통을 친 겁니다.

축구계 인사들이 각종 지적에 진땀을 흘리면서 결과적으론 의혹이 더 커졌는데요. 현안 질의가 끝이 아닙니다. 다음 달 7일부터 25일까지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문체위는 22일 열릴 대한체육회 국감 증인으로 정 회장을 채택했습니다. 문체위가 홍 감독을 또 불러낼 수도 있죠. 이 기술이사의 사퇴가 확정되면 후임도 물색해야 합니다.

문제는 축구 국가대표팀이 당장 다음 달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3·4차전을 앞뒀다는 겁니다. 홍명보호는 다음 달 10일 요르단을 상대로 원정 3차전, 다음 달 15일 이라크를 상대로 홈 4차전을 치릅니다. 안 그래도 아시아 강호들과의 2연전은 이번 3차 예선의 가장 큰 고비로 거론되는데요. 홍 감독이 선수 명단을 발표하는 30일로부터 이틀 뒤인 다음 달 2일, 문체부는 홍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중간 발표합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홍 감독의 리더십은 물론 선수들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죠.

전재수 위원장은 현안 질의를 마무리하며 "첨예한 이슈를 놓고 국민께서 보시기에 심하다 할 정도로 싸움이 벌어지는 곳인데, 내가 3선 국회의원이지만 그간 오늘처럼 여야 의원님들께서 한 치 이견 없이 한목소리로 대한민국 체육계를 질타한 건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는데요. 각종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지만, 되레 축구협회 내부의 무질서를 증명했다는 의견이 중론입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