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돌연 사퇴한 무소속 안철수 전 대선 후보의 요즘 행보를 보면 ‘안(철수)스럽다’거나 ‘철수답다’는 표현이 나올 법 하다. 그 뜻은 ‘우유부단해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면 될 것 같다.
그동안 대선 출마 선언 과정이나,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그가 보인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분명히 앞이 보이는 일에도 그는 계속 고민을 했다. 그의 이같은 심사숙고에 대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이 생각하지만, 한번 결정하면 되돌리지 않는다”고 평한 적이 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요즘 보면 이 전 부총리의 평가는 틀린 듯 하다. 끝없이 고민만 한다는 말이 더 맞을 법 하다.
그의 지난 행적을 보면 전형적인 햄릿형이다.
특히 지난 3일 안철수 캠프 해단식에서 그의 수사는 단연 압권이었다. 그는 이날 “지난 23일 사퇴 선언에서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하겠다, 이제 단일후보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성원해 달라고 말씀드렸다”면서 “저와 함께 새정치와 정권교체의 희망을 만들어오신 지지자 여러분께서 이제 큰 마음으로 제 뜻을 받아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마치 지지자들에게 ‘무슨 말인지 알지?’라고 선문답하듯이 했다. 세상은 그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밝힐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는 이처럼 생뚱맞았다.
이 말을 놓고 문 후보 측에서는 단일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재확인했다고 하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에서는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유보했다고 평가했다.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그의 화법이다.
그러자 안 캠프에서는 문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또 5일 오전에는 적극적으로 지원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바람을 잡더니, 오후 늦게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꼬리를 내렸다.
이제 국민들은 다 안다. 그의 속내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1997년 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제 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야당 김대중 후보가 접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누구에 대해서도 지지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이회창 후보가 맘에 들지 않았고, 숙적인 DJ의 당선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DJ가 승리하자 자신의 공이 가장 컸다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얘기를 했다고 한다. 대선 과정에서 검찰이 DJ의 대선 자금을 조사하겠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이를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지금 안 전 후보의 태도가 당시 YS의 심리와 비슷해 보인다. 도와주지 않을 경우 범야권으로부터 매도 당하는 게 두렵고, 적극 도와줘서 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차차기를 노리는 안 후보에게 결코 이롭지 않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바둑 격언에 ‘장고 끝에 악수둔다’는 말처럼 지금 안 전 후보가 그렇다.
안 전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지지자들에게 사랑한다면서 “국민들께서 만들어 주시고 여러분이 닦아주신 새정치의 길 위에 저 안철수는 저 자신을 더욱 단련해 항상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그의 표정에서 정치개혁을 내걸었던 초심은 찾기 어려웠다. 그런 초심이 있었는 지도 잘 모르지만. 오히려 권력욕에 빠진 정치꾼의 모습이거나, 팬들의 연호를 즐기는 대중스타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안쓰럽다.
젊은 층이 안 전 후보에 갖는 기대감은 기성정치권에 대한 절망에서 비롯됐다. 이 기대는 인간 안철수가 아니라 새로운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철수현상은 그가 아니면 안되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새 인물을 찾는 것이고, 그 조건에 그가 가장 가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데도 그는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는 근거없는 자만심에 가득차 있고, 아니면 나르시즘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가 안쓰럽고 그에 열광하는 청년들이 더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