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영의 너섬漫筆] 경제를 멍들게 한 '완장'

입력 2012-11-0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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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탤런트 조형기씨. 본업인 TV 드라마 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에서도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미남미녀가 가득한 방송사에서 그는 주역으로 도드라진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역시 연기자는 작품, 캐릭터 운이 따라야 한다. 1989년 이맘때 방송됐던 ‘완장’에서 그는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완장은 동네깡패 임종술(조형기 분)이 차마 권력이라 할 수 없는 완장(권력)을 차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뤘다. 권력에 집착하는 인간군상을 섬세하게 다뤘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여의도(너섬)에는 동서로 두 권력이 마주한다. 서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 사파리는 의회권력(정치권력)의 산실로, 12월 대통령 선거에 온 정신이 팔려 있다.

여의도 광장을 뜯어고쳐 만든 여의도공원 건너 동여의도에는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통칭 경제권력이 둥지를 틀고 있다. 두 권력이 공존을 모색하며 숨죽이고 있는 곳이 여의도다.

경제권력은 정치권력을 추종해왔다. 경제인의 대권 도전 역사만 봐도 짐작 가능하다. 정치권력은 강력한 통제력(지배력)을 기반으로 경제권력 위에 군림해왔다. 경제권력이 뛰면 정치권력은 날았다.

여의도 정치권력은 국정감사 때마다 그 힘을 과시하곤 했다. 19대 국회 첫 국감도 마찬가지였다. 여야를 떠나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던 초선 의원이 148명이나 됐기에 기대도 됐다. 하지만 의욕 넘친 ‘초짜’들의 맹활약(?) 덕분에 이번 국감에서도 폭로로 점철된 구태의 역사는 반복됐고 경제권력의 수난도 여전했다.

국민연금 국감에서는 비위 인사의 낙하산 인사를 지적한다는게 멀쩡한 금융기업 사장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는 촌극이 연출됐다. 국립공원에서 영업중인 모 업체는 경쟁업체 점포가 화재로 전소된 것 때문에 (절차상 전혀 하자가 없는) 재계약 문제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농심 사건이다. 라면 수프에서 발암물질 벤조피렌이 검출됐다는 초선 의원의 폭로에 놀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줏대없이 장단맞춤을 하다 소비자의 불안을 조장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요즘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크다. 정치권력 이상으로 비대해진 경제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필요성에 공감해서다. 그래서 정치권력의 묻지마식 한건주의 폭로가 정당화되고, 구태가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경제권력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정치권력이 교묘히 활용한 결과다.

뭇매 맞은 경제권력은 제몸 추스르기도 버겁다.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이미지가 훼손되는 유무형의 손실을 입은 후다. 어디가서 구제받을 길도,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저 소주 한잔에 라면 국물로 쓰린 속을 달래는 수밖에….

전가의 보도 같은 정치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완장’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다. 정치권력은 행사에만 관심을 둘 뿐 책임에는 유독 무지하다. 서여의도에만 오면 천하를 다 얻은 것 마냥 행동하지만 그래봐야 4년이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권불십년은 옛말, 권불사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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