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의 유쾌통쾌] 정부가 가격결정 하는 나라

입력 2012-08-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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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는 그들의 책 ‘슈퍼 괴짜경제학’에서 매춘의 가격결정 원리를 기발한 방법으로 파헤쳤다. 1900년대 초 미국 시카고에서는 매춘 여성들에게 오럴섹스를 받으려면 일반 성교의 댓가 보다 2배 이상 비싼 돈을 지불했다. 오럴섹스가 콘돔 없이 이뤄지는 일반적인 성교 보다 성병 감염 등의 리스크가 적다는 의사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금기시돼 있던 사회·문화적 영향 때문에 더 비쌀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럴섹스가 일반 행위 보다 훨씬 더 저렴해졌다. 성병에 걸릴 위험이 적을 뿐더러 비교적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에 대한 개방적 풍조로 인해 이런 행위가 더이상 금기가 아닌 점도 가격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레빗과 더브너는 에이즈 등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행위 보다는 오럴섹스가 낫다는 성매매 여성의 얘기도 곁들였다.

일반적인 가격결정이 수요와 공급, 기업의 일정한 이윤 등을 더해 산출하는 원리와 크게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문화적 환경에 따른 변수가 가격결정에 영향을 미친 사례다.

국내에서는 최근 라면과 참치, 햇반 등 가공식품 가격이 무더기로 인상됐다. 최근 몇년 간 가격을 올리지 못해 인상률도 10% 내외로 매우 높다. 글로벌 원재료값 상승과 인건비 등이 인상 요인이라고 기업들은 말하고 있다. 거기에 기본적인 영업이익을 고려해 적정 마진을 계산해 넣는 것도 빼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식품회사들은 이번 가격인상을 위해 한 가지 변수를 더 고려해야 했다. 그동안 물가억제정책을 써왔던 ‘정부’다.

최근 가격을 올린 A음료회사는 가격을 올리기 위해 농림수산식품부를 찾아 가격인상 이유를 설명하고 허락을 받았다. 1년 전 가격을 올리자마자 지식경제부에 회사 대표가 불려가는 수모를 겪었던 경험이 꽤나 아팠을 것이다.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주류 회사들도 가격을 올리기 전에 담당 부처인 국세청과 교감이 있었다.

식품회사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간 제때 가격인상을 하지 못했다. 10% 올려야 할 때 절반만 올린 경우도 허다하다.

대한민국에서 가격결정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선 수요와 공급, 기업의 이윤에 ‘정부’가 꼭 들어가야 한다. 오럴섹스 가격결정에 사회문화적 변수가 개입됐다면 한국에서는 정부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에 가격을 올린 식품기업들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허락을 받고 가격을 올리긴 했지만 공정위가 담합조사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놨기 때문이다. 또한 불황도 계속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이야기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정부’라는 변수에 불황까지 포함된다면 가격올리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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