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경쟁력 악화로 판매 부진…부품 일본 의존 높아 엔高 허덕
르노삼성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 2001년 르노그룹의 품으로 들어가 르노삼성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프랑스 르노그룹의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 일본 닛산의 정교한 기술력, 르노삼성의 치밀한 제조능력이었다.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단순히 르노와 닛산의 플랫폼을 가져다 차를 생산했지만 콧대를 세울 수도 있었다. 르노와 닛산이 혀를 내두를 만한 조립기술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렇게 삼박자의 탄탄한 자양분을 지닌 르노삼성의 최근 몰락은 자동차 산업에 적잖은 교훈을 주고 있다. 장점이었던 삼박자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은 지난 5월 한 달간 국내외 시장에서 1만2373대의 차를 팔았다. 내수시장에서 4665대, 수출 7708대다. 내수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8%, 수출은 33.6%가 줄었다.
올들어 1월부터 5월까지 누적 판매량도 전년대비 내수 38.3%, 수출 21.8%가 줄었다. 실적이 줄다보니 틈만 나면 공장 문을 닫는다. 지난 4월부터 한달에 4~5일씩 조업을 중단하고 있다. 팔리지 않아 재고가 넘치기 때문이다.
한때 SM5 한 차종만 6000대가 팔렸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모든 차종을 다 합해도 당시 판매량에 못미친다. 르노삼성의 자존심이었던 SM5가 이제는 르노삼성 경쟁력 약화의 중심에 서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최근 르노삼성의 부진에 대해 ‘제품경쟁력 약화’라고 입을 모은다.
SM5의 1세대 모델이 데뷔한 것은 1998년 삼성자동차 시절이었다. 당시 닛산의 맥시마를 베이스한 새 모델은 현대차 EF쏘나타를 앞서는 감성품질과 성능이 두각을 나타냈다. 출시와 동시에 현대차의 중형 세단을 단박에 앞섰다는 평가도 받았다.
2005년 2세대 역시 걸출했다. 닛산의 중형차 ‘티아나’가 밑그림이었다. 맞상대는 현대차 NF쏘나타. SM5는 쏘나타를 너머 윗급 경쟁차인 그랜저에 버금가는 차 크기에 넉넉한 편의장비, 모자람없는 성능을 앞세웠다. 2세대 SM5도 쏘나타를 바짝 추격하며 현대차를 긴장시켰다.
그러나 2010년 3세대에 이르러 상황은 급전직하했다.
일본 닛산의 간판급 중형차를 베이스로 했던 SM5가 르노 플랫폼으로 갈아탄 것. 르노삼성은 르노의 준중형차 ‘라구나’를 들여와 중형차로 개조했고, 제품경쟁력은 후퇴했다.
‘라구나’플랫폼은 크고 화려하며 잘 달리는 차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성향과 반대였다. 새 SM5는 이전보다 차 사이즈가 줄었고, 성능(최고출력 141마력)도 줄었다. 일본 닛산의 꼼꼼한 감성품질이 묻어나던 SM5가 프랑스차의 딱딱함으로 돌변했다.
SM5를 베이스로 만든 SM7 역시 걸출한 경쟁차인 현대차 그랜저와 기아차 K7에 대적하기 버거웠다.
새 모델들은 데뷔 초기 ‘르노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앞세워 판매를 늘려갔으나 소비자들은 이내 르노삼성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르노삼성 측의 “신차가 없어 판매가 부진할 뿐”이라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신차가 나온 이후에 지금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핵심부품 해외의존도 높아…엔고에 직격탄=2008년 리먼쇼크 이후 일본 차회사들이 엔고에 허덕였다. 르노삼성 역시 일본차와 비슷한 ‘엔고’ 타격을 받았다.
르노삼성은 엔진을 비롯한 핵심부품은 일본과 유럽에서 수입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 경쟁사보다 1대당 판매마진과 수익성이 떨어진다.
르노삼성의 글로벌 판매량은 2009년 18만9813대에서 2010년에는 무려 43%가 증가한 27만1479대를 기록한 뒤 2011년 24만6953대로 9%가 줄었다.
이 기간 순이익은 지난 2006년과 2007년에는 2213억원과 2067억원에 달했으나 2008년 760억원, 2009년 800억원, 2010년 361억원으로 해마다 급감했다. 지난해에는 무려 2921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부품의 수입의존도가 결국 환율 리스크에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비슷한 가격의 차 한 대를 팔아도 르노삼성이 남길 수 있는 영업이익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재투자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신차 라인업을 갖추기 어렵게되고 또 다시 악순환는 계속되는 셈이다.
때문에 르노삼성은 수익성 확보를 위해 모든 노력을 진행 중이다. 올 여름부터 부산공장에서 엔진을 직접 생산할 예정이다. 부산공장에서 생산되지만, 국산화율은 60% 정도다.
르노삼성의 브랜드 가치가 더 이상 공고하지 않다는 사실도 판매에 영향을 줬다.
르노삼성은 자동차 리서치업체의 조사결과 11년 연속 고객만족도 1위를 기록했다. 리서치 업체 측은 “르노삼성이 고객만족도 1위를 꾸준히 지켜오면서도 최근 판매가 부진한 것은 회사 측이 그 가치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내수시장에서 현대·기아차와 견줄 만한 브랜드와 제품력을 갖춘 회사는 르노삼성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르노삼성의 최근 부진을 안타까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