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야 하는데" 발만 동동…일단락된 '11월 폭설', 끝이 아니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4-11-2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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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지역에 많은 눈이 내린 28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한 버스정류장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부장님, 죄송하지만 오늘 지각할 것 같습니다…
예? 부장님도 지하철이시라고요?

오늘(28일) 출근길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전날부터 이틀째 많은 눈이 쏟아지면서 도로 곳곳이 마비된 건데요. 마을버스 운행이 중단되는가 하면 지하철 운행도 지연돼 다수의 지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번 폭설은 사실상 '첫눈'이었다는 게 이례적입니다. 통상 한국에서 첫눈은 진눈깨비 형태로 내립니다. 서리나 약한 눈보라로 나타나기도 하죠. 쌓이기도 전에 금방 녹아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건데요. 이번엔 달랐습니다. 전날에 이어 간밤에 또다시 폭설이 내리면서 이날 아침 수도권에는 40㎝ 넘는 눈이 쌓였죠.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이런 이례적인 폭설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진 28일 오전 시민들이 경기 군포시의 모습을 전했다. (출처=네이버 날씨 오픈톡 캡처)

눈 얼마나 왔길래…안타까운 사고도 잇따라

전날인 27일 서울에는 11월 기준으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117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쏟아졌습니다.

이날 서울(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 기준)의 시간별 적설을 보면 오전 6시 15.2㎝를 돌파하면서 1907년 10월 서울 기상관측 이래 11월 '일최심 적설' 기록을 경신하더니 오전 7시엔 16.5㎝까지 올랐습니다. 눈이 녹으면서 떨어진 뒤 오후 3시엔 18.0㎝까지 오르면서 신기록을 또다시 갈아치웠습니다.

28일에도 눈은 쏟아졌습니다. 오전 8시 기준 적설을 보면 경기 용인(처인구 백암면) 47.5㎝, 수원 43.0㎝, 군포(금정동) 42.4㎝, 서울 관악구 41.2㎝, 경기 안양(만안구) 40.7㎝ 등 경기남부와 서울 남부권을 중심으로 곳곳에 '성인 무릎 높이' 만큼의 눈이 쌓였죠.

수원은 11월뿐 아니라 겨울을 통틀어 1964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눈이 쌓였습니다. 전날 이미 30㎝가량 눈이 쌓인 상태에서 밤사이 눈이 더 쏟아지면서 적설이 40㎝를 넘긴 겁니다.

서울 지역 적설량 기준인 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에서 측정한 적설은 같은 시간 기준 28.6㎝였는데요. 이 정도 눈이 쌓인 상황은 11월뿐 아니라 겨울을 통틀어서도 드뭅니다.

서울은 1907년 10월 근대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눈이 높게 쌓였을 때가 1922년 3월 24일의 31.0㎝인데요. 두 번째가 1969년 1월 31일 30.0㎝, 세 번째가 1969년 2월 1일 28.6㎝입니다. 기상기록은 최근 기록을 상위에 놓는 터라 이날로서 3위 기록이 바뀌게 됐죠.

거주 및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경기 지역에 눈 폭탄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면서 시민들도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서울시는 이날 출근길에 와룡공원로, 북악산길, 인왕산길, 삼청터널, 서달로, 흑석로 등 6곳의 도로 통행을 중단했고요. 수인분당선 양방향 열차는 일부 지연 운행되면서 1시간 이상 플랫폼에 대기한 시민들도 숱했습니다. 용인에서는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량들 옆으로 스키를 타고 질주하는 시민도 포착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늘길과 바닷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135편이 결항됐고 김포국제공항 출발 항공기 21편도 끊겼습니다. 목포와 제주, 인천과 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 104척도 운항을 중단했죠.

안타까운 사고도 잇따랐습니다. 이날 오전 5시께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단독주택 인근에서 갑자기 나무가 쓰러지면서 집 앞의 눈을 치우던 60대 A 씨를 덮쳤는데요.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습니다. 오전 9시 1분께엔 강원 횡성군 서원면 창촌리 한 우사에서 70대 B 씨가 지붕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죠.

(게티이미지뱅크)

여름엔 물 폭탄, 겨울엔 눈 폭탄…배경은 '뜨거운 바다'

지난여름은 물 폭탄으로 고생했는데, 초겨울의 시작은 눈 폭탄으로 열게 됐습니다. 비에 이어 눈까지 한 번에 왕창 쏟아지면서 피해를 키우는 모습인데요. 국지성 폭우와 폭설의 원인 중 하나론 '뜨거운 바다'가 꼽힙니다.

이날 기상청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서쪽에서 생긴 눈구름이 수도권으로 유입되면서 강하고 많은 눈이 내렸다"며 "평년보다 높은 해수면 온도가 많은 폭설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통상 한반도에 내리는 눈은 서해의 수증기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바닷물과 공기의 온도 차가 클수록 수증기가 많이 생기는데, 현재 서해의 해수면 온도는 섭씨 12~15도로 평년보다 약 1~2도 높은 상황이라고 연합뉴스 등이 전했는데요. 온난화로 기온 자체는 그렇게 낮지 않지만, 여름에 뜨거웠던 바닷물이 채 식지 않으면서 해수와 대기의 온도 차인 '해기차'가 약 25도에 달하게 됐고, 증발량이 많아지면서 눈구름이 강하게 발달했습니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따뜻한 서해 위를 지나면서 대기로 열과 수증기를 밀어 넣었고, 구름이 발달해 폭설로 이어진 겁니다. 여름 폭염의 영향이 이날 대설로까지 이어진 셈이죠.

이런 해기차 눈구름대는 주로 서해안 쪽에 눈을 집중적으로 쏟아냅니다. 수도권까지 영향을 미치더라도 경기 남부에 집중되곤 하는데요. 이번 폭설이 서울에도 쏟아진 이유는 한반도 북쪽에 자리한 절리저기압과 남쪽의 시베리아 고기압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한반도 대기 상층에서는 공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빠르게 흐릅니다. 이를 제트기류라고 부르는데요. 제트기류는 직선처럼 곧게 흐를 때도 있지만, 구불구불하게 흐를 때도 있습니다. 구불거림이 심해지면 제트기류 흐름이 분리되면서 절리저기압이 만들어지는데요. 절리저기압은 북극의 찬 공기를 머금어서 회전하는 형태라 중심부가 매우 차갑고, 대기를 불안정하게 만들곤 하죠. 절리저기압에 의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찬 공기는 지상으로 가라앉았고, 기압골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압골 때문에 바람 방향이 서풍으로 바뀌면서 이를 타고 눈구름이 수도권까지 들어온 겁니다.

▲이틀째 수도권 폭설이 이어지고 있는 28일 경기도 의왕시 도깨비시장 아케이드 지붕이 무너져 있다. (연합뉴스)

수분도 많이 먹어 무거운 눈…'내렸다 하면 폭설' 가능성도

뜨거운 바다는 이번에 내린 눈을 '습설'로도 만들었습니다.

습설은 말 그대로 습기를 머금어 축축한 눈을 말합니다. 기온이 0도 안팎으로 다소 높고 대기 중에 수증기가 많거나 눈구름이 해상을 지나면서 풍부한 수증기를 공급받는 등의 조건이 형성되면 습설의 형태로 눈이 내릴 수 있는데요. 수분이 많은 만큼 잘 뭉쳐진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습설은 건조한 눈에 비해 그 무게가 2~3배가량 많이 나갑니다. 가로 10m, 세로 10m 정도 공간에 20㎝만 쌓여도 무게가 2.4톤(t) 정도 나간다고 하죠. 가로수가 꺾이거나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등 사고가 발생한 것도 쌓인 눈이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날 절리저기압이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수도권 등에 폭설은 멈췄지만, 아직 우리나라로 찬 북서풍이 불어 드는 상황입니다. 찬 공기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서해 위를 지나면서 서해 상에 형성된 비구름대도 유입되는 중이죠.

절리저기압이 점차 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29일 오후까진 앞선 폭설보다 약한 수준의 눈·비가 전국에 오락가락 내릴 수 있겠는데요. 토요일인 30일 새벽부턴 고기압 영향권에 들며 맑은 날씨가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후로도 안심할 순 없습니다. 우선 맑은 날엔 내린 눈이 낮에 녹았다가 밤에 얼기를 반복하면서 도로에 살얼음이 끼게 됩니다. 빙판길 등 교통안전에 특히 주의해야 하는데요.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이번 겨울뿐 아니라 내년 겨울에도, 내후년에도 눈 폭탄이 갑자기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올해는 지구가 가장 뜨거운 한 해였습니다. 기상학계는 수개월 전만 해도 "시베리아 기단과 라니냐의 영향으로 올겨울엔 평년보다 강한 추위가 올 것"이라고 내다본 바 있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고온현상을 일으킨 엘니뇨가 매우 강하게 나타났었기 때문인데요. 일반적으로 엘니뇨와 라니냐 현상은 번갈아 나타나기에, 올해는 그만큼 강력한 라니냐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었죠.

그러나 최근 예측 데이터가 추가되면서 '따뜻한 겨울' 전망에 힘이 실렸습니다. 기상청은 26일 "다음 달부터 내년 2월까지의 기온은 평년보다 높을 것"이라며 "확률은 약 80%"라고 발표했죠. 기온이 오를수록 대기 중 수증기량은 많아지는데 이는 여름엔 폭우로, 겨울엔 폭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기성 YTN 재난자문위원은 'YTN 뉴스UP'에서 "(이번 눈은) 200년에 한 번 정도 나타날 수 있는 빈도"라면서 "최근 기후변화로 본다면 이런 빈도가 발생하는 횟수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이번처럼 서해 상의 해수 온도가 굉장히 높은 상황에서 중부지방으로 약하게 기압골이 만들어진 형태는 자주 나타나는 형태가 아니다"라며 "이전보다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날 가능성은 큰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죠.

기후변화의 가장 무서운 점은 예측하기 어려운 기록적인 재난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앞으로 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기상재난에 대비해 정부 차원의 더 세밀하면서도 유연한 종합 대책이 필요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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