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도입을 주장한 8-5제(오전 8시 출근 오후 9시 퇴근)가 재정부서 여전히 찬밥 신세다. 재정부 전체 직원의 8%만이 유연근무제를 신청한 상태로 8-5제로 한정할 경우 이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비효율적으로 장기간 근로시간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박 장관의 노력에도 이는 쉽게 안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오래 전부터 8-5제 시행을 꾸준히 준비해 왔다. 그 발단은 지난해 6월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내수활성화 국정토론회에서 8-5제 아이디어를 직접 낸 것으로 시작됐다. 오랜 미국 유학시절의 경험으로 퇴근시간을 한 시간만 앞당겨도 직장인들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장관은 말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작년 7월 유연근무신청서를 제출, ‘1호 유연근무 장관’으로서 8-5제를 몸소 실천했다. 박 장관의 실천력은 유명하다. 친환경차에 대한 소신에 따라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친환경 소형차를 고집해 이용하고 있다.
그는 반년 동안 8-5제를 직접 실천해 본 후에는 전 공무원들에게도 권장했다. 지난 2월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정시 퇴근을 하라고 독려하면서 올 여름부터 공공부문에 8-5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관계부처인 행안부의 반대에 부딪쳤다. 행안부는 획일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8-5제 전면 도입보다는 업무나 기관별 특성에 따라 근무형태를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활성화하는 편이 낫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박 장관은 재정부만 우선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부처의 출퇴근 시간은 책임 장관이 결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김규옥 재정부 기획조정실장은 8-5제 시행과 관련해 여러 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재정부 내부 전용 메신저 ‘모피스’에 기록된 직원들 로그인·로그아웃 시점에 관한 통계를 뽑아 그래프로 분석하기도 했다.
조사결과 오전 9시 출근 로그인 횟수가 큰 폭으로 늘었다가 오후 6시 퇴근 로그아웃이 크게 증가하고, 다시 오후 9시쯤 로그아웃한 이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즉 오후 6시까지 일을 마치지 못한 공무원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복귀해 겨우 몇 시간 일하고 귀가 한다는 것. 이에 따라 식비 낭비는 물론 일의 효율성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차체적으로 내기도 했다.
또 행안부가 문제점으로 제기한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데려다 줘야 하는 여성 직원들의 경우에는 기존과 같이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면 돼 행안부가 제기한 반대 근거는 조금도 문젯거리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아직까지는 8-5제를 재정부에만 도입한다는 입장이지만 그의 지금까지 행보로 보아 재정부에 우선적으로 시행한 후 공공기관 전체에 8-5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박 장관은 공공부문 근무시간 변경(8-5제)에 따른 효과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은 오랜 시간 일하고 생산성이 낮은 근로관행을 이어왔으며 최장 근로시간을 지난 국가라는 오명을 그동안 유지해 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 장관의 의지대로 8-5제를 중심으로 한 유연근무제를 전부처로 확대하고자 하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관련부처인 행안부의 반대는 물론이거니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자칫 근로시간 연장만 초래할 수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실제로 현재 재정부 소속 직원 969명중 80명이 유연근무제를 신청했다. 대부분 정규 출근시간인 오전 9시간보다 일찍 근무하겠다고 신청한 이들이지만 재정부 직원 8% 정도만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기준 유연근무제 도입률 평균은 중앙부처의 경우 5.9%,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5.1%로 재정부가 조금 더 높지만 지난해 말 예산안 통과로 바쁜 재정부 예산실 직원들이 많이 신청해 8% 정도로는 활성화됐다고 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또 오는 2015년까지 전체 노동인구 중 30%가 스마트워크(smart work;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근무 형태)를 실시할 방침인 상황에서 시간을 못 박는 8-5제는 정책 방향에 역행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올 연말 세종시로 이주하는 재정부가 8-5제를 시행하게 되면 현지거주가 불가피해 ‘강제이주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점도 8-5제 도입의 장애물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