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연극 '노인과 바다'…노인과 자연의 힘겨루기 '승자는 없다'

입력 2011-04-08 16:41수정 2011-04-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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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노인과 바다
한 청년이 손 모양으로 날갯짓을 해보인다. 그가 표현하는 것은 새다. 새는 공중을 날아올라 노인이 던져놓은 낚싯줄 위에 서서히 앉는다. 동시에 청년도 조심스레 앉아 보인다. 새가 팽팽해진 줄의 미동에 하늘 위로 날아가 버린다.

관객들의 시선은 새에서 낚싯줄을 힘겹게 잡고 있는 백발노인에게 향한다.노인은 대어(大漁)와의 싸움 중 이다. 고기의 힘이 어찌나 센지 노인은 이틀간 그 낚싯대를 붙잡고 있다고 제 3 관찰자 시점에서 청년은 설명한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붙어보자”

바다를 상대로 끈기를 시험하는 노인은 낚싯대를 사이에 두고 물고기와 힘 겨루기를 한다. 하지만 정작 한쪽의 낚싯대를 붙잡고 있는 이는 무대 한 켠의 관객이다. 관찰자는 객석의 커플을 향해서 바다 위 헤엄치는 암수돌고래라고 지칭하며 객석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렇듯 주변의 관객들은 순식간에 극의 등장하는 물고기가 된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원작으로한 연극 ‘노인과 바다’는 노인역에 영화배우 정재진이, 각색된 청년 역에는 뮤지컬 배우 박상협이 열연한다.

노인, 그리고 청년. 그 두 명만으로 채워지는 ‘노인과 바다’는 90분 내내 강약을 조절하는 대사와 음악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청년은 노인의 꼬마친구이자, 내레이션, 보이지 않는 물고기 등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이야기를 견인한다. 이 작품은 노인이 바다와 사투를 벌이는 고단한 장면을 실감나면서도 위트있게 표현하며 관객에게 사색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누가 누굴 죽이든 상관없어. 너희들에게도 권리가 있으니까”

대어에게 말을 건내는 노인의 독백이다. 이는 자연 앞에서 오만함을 버린 인간이, 생명 대 생명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자연에게 승부를 가릴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 살아있는 것들이 맞부딪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극은 말한다. 노인은 손 끝이 낚싯줄에 베어 피가 나도록 사투를 벌이다 결국 물고기를 낚는데 성공하지만 그 물고기는 상어떼에 뺏기고 만다. 내레이터 위치에 있던 청년은 상어떼의 형상으로 노인이 힘겹게 잡은 고기를 잔인하게 물어뜯는다. 뼈만 남은 물고기를 가지고 마을로 돌아가는 노인의 구부러진 뒷모습이 애처롭다. 구부러진 등 뒤로 관객들이 느끼는 것은 인간의 한계, 자연과 싸워 승부를 보려는 것에서 오는 무모함이다.

하지만 무대를 채우는 음악은 슬프지 않다. 새 희망을 내레이션과 음악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내레이션은 상심에서 다시 평정을 찾는 노인의 심리를 전달한다. 다시 잠들기 위해 몸을 눕히고 눈을 감는 노인. 내일 해가 뜨면 그 노인의 치열한 삶도 다시 시작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극은 삶은 죽기 전까진 싸움의 연속이고 사투일수 있지만 그것에 연연한 삶을 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승리자라고 암시한다.

연극 '노인과 바다'는 화려한 무대연출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잔잔하게 사색을 주는 시놉시스 덕분인지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아련한 느낌과 노인의 바다와의 사투장면이 파노라마 처럼 관객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특히 박상협의 사자 및 갈매기 등 살아숨쉬는 것들을 연기한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이번 공연은 관객들의 러브콜로 지난 5일부터 연장 공연에 돌입, 7월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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