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부동’(浮動)이라는 말은 이중적이다. 그래서 쓰임이 재미있다. 상황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뿌리가 없어 떠돌아 다니지만, 뿌리가 없어 자유롭다. 이리저리 떠다니며 눈치 보고, 좋은 것만 고르니 기회주의적이거나 이기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점에서는 진취적이기도 하다. 겉도는 것 같아 보이지만 또한 주변을 살피는 점에서 신중함을 엿볼 수 있으니 이중적인 언어가 바로 ‘부동 ’(浮動)이다.
부동(浮動)은 ‘불확실성’과 궤를 같이 한다. 뿌리가 없어 떠돌아 다녀야 하니 태생적으로 불확실하다. 모든 부동(浮動)은 어디로 튈지,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 더욱 불안하고 불확실하다. 내 편이면 단순히 ‘플러스 1’이 되지만, 내 편으로 생각한 표가 반대편으로 가면 ‘마이너스 2’가 되어 치명적이다. 그래서 더 이중적이고, ‘긍정의 힘’을 갖기가 참 망설여지는 단어가 부동(浮動)이다.
주변에는 별로 없지만, 시중에 돈이 넘쳐난다고 한다.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해 떠돌아다니는 ‘부동자금(浮動資金)’이 내년 1분기 중 600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다. 600조원이면 내년 정부예산(309조원)의 2배에 해당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2007년 집값이 ‘묻지마’식으로 급등할 당시의 부동자금이 70조원 정도였으니, 이와 비교하면 지금 부동자금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겠다. 이런 크기의 부동자금을 지금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은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불확실성이 자금시장을 넘어 경제 전반에 심각한 불확실성을 키울 개연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규모 외에 현재의 부동자금을 우려하는 데는 두가지 이유가 더 있다.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과 물가불안 거품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다.
부동자금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것은 돈이 갈만한 매력적인 투자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돈을 흡수할 뚜렷한 상품이 없는 것이다. 시장실세 수익률로 발행되어 시중의 자금사정을 상징하는 지표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 초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물가 상승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상 ‘제로 금리’여서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 메리트가 낮을 수 밖에 없다. 기업의 실적 호전도 부동자금의 빠른 증가에 한몫 하고 있다. 기업들의 경영실적 호조는 자금사정을 개선시키고, 이는 대출수요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시중의 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로 우려되는 것은 이미 지나치게 많은 부동자금이 경제 요소 곳곳에서 다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며 경제 전반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물가불안이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불안은 내년도 한국 경제 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복병이다. 본지가 최근 경제분야 오피니언 리더 1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1 경제 대전망’ 설문조사에서도 상당수(85.5%)가 응답의 강도는 다르지만 물가를 내년 경제의 최대 위협으로 지목했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메우려 달러를 대량 살포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물가불안은 이미 국내외 안팎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한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부동자금은 상승탄력을 받고 있는 주식시장이나, 침체에서 깨어날 조짐을 보이는 부동산시장에 한꺼번에 몰려다니며 거품을 만들어 내는 등 시장의 건전성을 훼손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시장에 심각한 왜곡현상을 초래, 나중에 엄청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돈이 아니라 변종 세포가 될 수 있다. 돈을 돈답게 귀하게 활용될 방안, 즉 부동자금이 설비투자와 고용창출 등 생산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부동자금의 선용책 마련이 ‘물가와 고용’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상수가 아닌가 싶다. 지금 한국 경제는 너무 많은 불확실성에 둘러 싸여 있는데 많은 돈마저 변수가 되는 세상이다. 어쩌면 경제라는 것 자체가 ‘부동(浮動)과 불확실성의 덩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