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자산 규모, 미국 1년 예산 넘어...美 산업계의 대가 혹은 악덕기업의 표본
록펠러 가문의 영광은 존 데이비슨 록펠러 1세(1839∼1937)의 회계장부로부터 시작된다. 열악한 가정환경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록펠러는 일기 대신 회계장부를 적으며 하루를 셈으로 매듭지었다.
평범한 기업인이었던 그에게 갑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기름이었다.
대규모 유전 발견 이후 록펠러는 1863년에 클리브랜드에 정유회사를 설립했고 1870년 오하이오 스탠더드석유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한다. 뛰어난 경영 마인드로 그는 곧 최대 정유 회사의 주인이 됐다.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담합)를 조직, 기업의 독점지배를 확립하며 세기의 기업인으로 거듭난다.
록펠러가 담합의 수단으로 주목한 것은 철도업. 석유 운송의 핵심 수단이었던 철도업체에 리베이트를 제공, 지배영역을 확대해 업계를 장악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끊임 없는 경쟁업체 협박, 비밀 카르텔 형성, 정치권 매수 등 부도덕한 방법을 이용했고 결국 1880년대 초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독점하기에 이른다.
이후에도 경쟁업체 혹은 군소업체 기술을 탈취해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면서 전성기를 누린다.
특히 록펠러의 부정행위 폭로는 탐사보도 발전의 탄력을 받았다. 19세기 후반 공무원, 기업 등의 힘을 견제하며 발전하기 시작한 탐사보도에 록펠러 역시 자유롭지 못했고 이에 여론의 비난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록펠러의 치졸한 사업방식은 그에게 엄청난 부를 제공했다. 미국 산업계 흐름도 그의 편이었다. 바로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부터 그는 자신이 예상치 못할 정도로 주체하지 못할 수준의 돈을 긁어모았다. 1897년까지 2억달러였던 재산은 1913년 미국 자동차 산업 발전으로 주가가 급등하면서 5배로 늘었다.
록펠러의 재산은 미국의 1년 예산규모가 약 7억1500만달러임을 감안하면 9억달러에 이르는 록펠러의 재산은 당시 사람들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였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1937년 록펠러 사망 당시 자산은 미국경제의 1.53%를 차지했다. 이는 물가를 감안할 때 세계적인 부호 빌 게이츠 재산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포브스는 지난 2008년 록펠러를 역대 최고 부자로 선정했다. 현재 가치로 3183억달러(약 318조3000억원)에 육박하는 재산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1년 예산액인 300조원도 뛰어넘는다.
록펠러는 하나의 제국이었다.
이 같은 자본력은 미국 자본주의에서 철강왕 카네기, 철도왕 밴더빌트 등과 함께 그가 핵심적인 인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록펠러 가문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정치계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가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사건 등 미국의 현대사를 이루는 굵직한 사건들에 록펠러 가문이 개입돼있다는 음모론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록펠러 가문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미국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이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현재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인 엑슨모빌도 뿌리는 록펠러에 있다. 1911년에 미국에 반트러스트법(반독점법)이 생기면서 록펠러의 트러스트가 저지스탠더드오일(엑슨), 뉴욕스탠더드오일(모빌), 캘리포니아스탠더드오일(셰브런) 등 34개의 독립회사로 해산됐고 이후 엑슨이 모빌을 인수하면서 엑슨모빌이 탄생했다.
스탠더드 오일은 엑슨모빌의 기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