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 앞에 방치돼 있던 택배 봉투를 버린 이에게 검찰이 절도죄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은 잘못됐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27일 A 씨가 청주지검 충주지청 검사를 상대로 제기한 기소유예 처분 취소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
A 씨는 2022년 4월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해 9월 아파트 현관 앞에 택배 봉투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고, 한 달 가까이 주인이 찾아가지 않자 버려진 물건이라 생각해 분리수거장에 가져가 버렸다.
물건의 주인 B 씨는 A 씨의 입주 한 달 전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사람이었다. 보험사로부터 사은품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2만 원 상당의 스테인리스 도마를 선택했고 전에 살던 아파트로 물건을 배송시켰다.
B 씨는 11월 중순이 돼서야 전에 살던 아파트에 방문했다. 이미 A 씨가 물건을 버린 뒤였기에 택배를 찾을 수 없었던 B 씨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아파트 복도 CCTV 영상을 확인한 경찰은 A 씨를 절도 혐의로 입건했고, 그해 12월 검찰은 A 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는 않는 것을 말한다.
헌재는 A 씨에게 절도죄의 고의가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잘못 배송된 택배가 25일 동안 방치됐기에 버리는 물건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였다. 또 A 씨가 택배를 현관 앞이 아닌 분리수거장에서 개봉하고 도마의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다.
헌재는 “A 씨가 택배를 버린 것은 자신의 아파트 현관 앞을 청소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불법영득의 의사 즉,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그 경제적인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검찰은 증거가 부족함에도 별다른 보강 수사 없이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며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고 이로 인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