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출생신고 거부로 무국적 신세
광주시-중국대사관 노력으로 중국국적 취득
17일 중국으로 이동…하지만 그곳에서도 보호소로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국내 아동 보호소에서 머물던 영민(가명)이가 모국인 중국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그곳에서도 부모 없이 시설에서 지낼 예정이지만, 모국이 생긴다는 점에서 지금의 환경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단독] 출생신고 않고 사라진 부모…영민이는 유령이 됐다 [있지만 없는 무국적 유령아동①])
16일 광주시 소재의 모 학대피해쉼터 등에 따르면 영민이는 중국 국적을 획득하고 17일 모국으로 이동한다.
곧 3살이 되는 영민이는 시설에 입소해 약 1년간 지내고 있다. 부모가 없었지만 지자체와 보호소의 관심 덕분에 건강에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영민이는 중국으로 가야 한다. 친모가 중국인이고, 국내에서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간 광주시는 수원출입국사무소,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와 함께 영민이 관련 상황을 수시로 공유했다.
오랜 기간 논의한 끝에 광주시와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관은 16일 광주시청에서 ‘무국정 아동의 모국 보호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고, 영민이를 보호하자는 데에 뜻을 모았다.
두 기관은 영민이를 친모의 모국인 중국 길림시로 데려가기로 했다. 임시 여권도 발급된 상태다.
물론 중국으로 가더라도 친모는 만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영사부에서 친모의 위치를 파악 중이나,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영민이의 조부와는 연락이 닿지만 “아이를 양육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영민이는 중국에서도 아동보호소에서 홀로 지내게 되지만, 여러 환경과 여건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도 있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출생등록이 가능하고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 마서주(MA XUZHU) 참사관은 “광주시에서 외국인 아동을 정성스럽게 보호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라며 “중국과 한국의 보호체계가 다르지만 아동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보살피겠다”라고 말했다.
방세환 광주시장은 “아동은 무국적으로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었지만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아동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방안을 마련했다”며 “아동의 안전한 보호를 위하여 주한 중국대사관과 길림 주무관이 직접 아동을 인도함을 감사드린다. 앞으로 무국적 아동을 위한 제도개선에도 노력하고 아동보호에도 힘쓰겠다”라고 화답했다.
영민이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중국인 친모 정모 씨의 아동학대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수사기관은 정 씨의 집에서 생후 10개월인 영민이를 발견했다.
문제는 영민이가 출생신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 씨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며 영민이의 존재를 부정했고, 수사기관의 유전자(DNA) 동일성 검사결과에서 정 씨와 영민이의 유전자 일치율은 99.9999%로 나타났음에도 정 씨가 출생신고를 거부했다. 친부 존재도 파악이 안됐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던 중 정 씨는 다른 형사 사건에 휘말려 구속됐고, 법무부는 정 씨를 추방시켰다. 정 씨가 중국으로 넘어가며 영민이는 한국에 홀로 남게 됐다.
차라리 영민이가 고아였다면 상황은 나아졌을 것이다. 국적법에 따르면 부모가 분명하지 않은 아이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다. 그러나 아버지가 분명하지 않고 어머니는 중국 국적인 영민이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다.
부모가 한국인인, 국내 아동의 경우 출생사실통보제에 따라 지자체장과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사실을 확인하고 직권으로 출생신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아동은 예외다. 친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영민이는 서류상 이 세상에 없는 존재인 셈이다.
국회에는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을 가능하게 하는 ‘외국인아동의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안(제정)’이 발의된 상태다. 지난해 10월에는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 등에 관한 법률(안) 심포지엄’이 열렸고, 제도 필요성에 대해 여야 구분 없이 합의점을 이뤘다. 에서는 이 같은 제도 필요성이 논의됐다. 그러나 아직 법안은 상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