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하반기에는 녹록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위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속도 조절, 국내 계엄·탄핵 등 정치 리스크가 연달아 부각되면서 차갑게 식어갔다. 주요 관계자들은 고금리와 고환율이 지속하면서 내년 자금조달 시장은 올해보다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IPO 대어 속속들이 등장 = 지난 16일 엠앤씨솔루션이 코스피 시장에 입성한 것을 끝으로 올해 IPO 시장은 막을 내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은 총 119개사로 집계다. 이는 지난해 128개사에 비해 소폭 못 미치는 수치다.
그러나 총 공모금액은 4조2494억 원으로 작년보다 5.2%(2106억 원) 증가했다. 상장 기업 수는 적어도 유가증권시장에 이른바 알짜배기 ‘대어’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중 공모금액이 가장 많은 곳은 두산로보틱스(421억 원)와 에코프로머티(419억 원)이 전부였다.
올해 코스피 시장에서는 1000억 원 이상의 대어급이 자주 나타났다. 2월 에이피알(947억 원), 5월 HD현대마린솔루션(7423억 원), 7월 시프트업(4350억 원), 11월 더본코리아(1020억 원) 등 총 8개 기업이 공모 상장에 나섰다. 지난해 코스피 시장에는 7개 기업이 상장했고, 그마저도 리츠를(한화리츠·삼성FN리츠) 제외하면 5개로 줄어든다.
IPO 훈풍은 7월부터 꺼져갔다. 뱅킹 솔루션 기업 뱅크웨어글로벌이 올해 처음으로 희망범위 하단에 공모가를 결정지으면서다. ‘뻥튀기 상장’ 논란을 지핀 파두와 국내 IPO 사상 첫 상장예비심사(예심) 승인이 취소된 이노그리드도 IPO 거품을 키웠다.
특히 지난 10월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가 국내 상장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미국 상장을 택한 점이 뼈아프다. 토스의 기업가치는 시장에서 약 15조 원으로 평가된다. 한 ECM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토스의 미국행은 유독 아쉬워하고 있다. 국내 IPO 불신을 보여주는 면목”이라고 평했다.
◇역대급 연초효과 발행 호조 ‘BBB’까지 훈풍 =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발행된 선순위 무보증 회사채는 총 122조706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89조1580억 원, 2022년 76조6110억 원과 비교해도 압도적 규모다.
연간 공모채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업은 458곳이었다. 최근 3년간 수요예측에 나선 기업이 평균 300여 곳을 겨우 뛰어넘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증가했다. 연초 효과를 노리고 1분기에만 117개 기업이 공모채 수요예측에 참여했다.
올해 DCM 시장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A등급 이하 비우량 등급까지 온기가 퍼진 점이다. BBB이하 신용등급에서 올해 공모채 수요예측에 나선 기업은 총 29곳으로 지난해(17곳)의 두 배 가량이다. 공모주 열기와 지난해 부활한 하이일드펀드 분리과세 정책 영향은 신용등급 BBB+ 이하 기업 자금조달에 숨통을 불어넣었다.
비우량기업들은 통상 기관들의 북클로징(장부정리)으로 한산한 11월 이후에도 효성화학(BBB+), 한화오션(BBB+), 에이제이네트웍스(BBB+) 등이 수요예측에 나섰다. BBB등급의 지난해 마지막 수요예측은 에스엘엘중앙(BBB)이 9월 말에 참여해 금리밴드 상단인 7.20%와 7.9%에 겨우 들어온 것과 대조적이다.
DCM 관계자들은 올해 회사채 시장이 이토록 호조를 보일 수 있던 이유로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꼽았다. 초장기 국채 30년 선물 상장과 연내 기준금리 인하가 임박했다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회사채 금리가 인하를 선반영하고 기준금리를 밑돈 점도 수요예측에 풍부한 유동성이 흘러들어오게 했다.
다만 BBB등급 내에서도 기업 펀더멘털(기초체력) 옥석가리기는 계속됐다. 효성화학(BBB+)는 지난달 27일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매각을 기록하고 희망금리 밴드 최상단인 7.70%에 발행금리를 확정지어야 했다. 같은 BBB+인 한화오션은 목표액 500억 원보다 무려 8배 많은 4200억 원의 자금이 몰려 증액발행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