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령부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탄핵안) 표결까지 불과 사흘 만에 숨 가쁘게 움직이면서 한국 국가 신용등급에 변동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과거 2차례 탄핵정국 당시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들은 모두 정치 리스크가 국가 신용도에 타격이 없을 것으로 평가했지만, 탄핵 정국이 세 차례나 반복되면서 신용도 향방은 불투명하다.
6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한국 신용등급을 가장 낮게 평가하는 곳은 피치다. 피치는 한국 신용등급에 'AA-'를 평가 중이다. 2012년 'A+'에서 'AA-'로 상향 조정한 뒤 같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S&P(스탠다드앤드푸어스)와 무디스(Moody's)는 각각 AA와 Aa2를 부여하고 있다. S&P는 2016년, 무디스는 2015년에 마지막으로 한국 신용등급 상향을 한 뒤 약 8년째 같은 등급을 유지 중이다. 신용등급 전망은 모두 '안정적'으로 평가된다.
신용등급은 국가 또는 기업이 채무를 이행할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통해 결정된다. 신용등급이 높다는 것은 채무 상환 능력이 우수하고, 예측 가능한 미래 환경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원리급을 지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2004년 3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 시기에 이들 신평 3사는 탄핵 이슈가 한국의 신용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경제가 탄핵사태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궁극적으로 안정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디스는 "한국의 대통령 탄핵 사태가 정치적 불확실성을 유발할 것으로 보이지만, 신용평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피치와 S&P 역시 당장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은 낮게 봤다.
피치는 '동아시아 정치와 신용위기'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정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라면서도 "비록 부정적 요인이기는 하지만 탄핵안 가결 자체만으로는 즉각적인 신용등급 재검토 요인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번 일이 어떻게 결말 될지, 그리고 이처럼 급격히 증대된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경제에 위협이 될지 여부”라고 덧붙였다. S&P 아시아태평양지역 신용평가본부도 "한국 정치 불확실성이 정책 지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문제없다"고 논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던 2016년에도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정치적 혼란의 불확실성이 국가 신용등급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봤다. 신평사들은 한국 헌법에 근거했을 때 국내 정치가 탄핵 혼란을 소화 가능하다고 밝혔다.
피치는 "정치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경제활동이 차질을 빚진 않을 것"이라고 했고, 무디스는 "탄핵이 정부나 정책 입안의 정상적인 운영에는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 S&P 또한 "이로 인해 한국 국가신용지표가 크게 영향을 받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신평 3사는 한국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앞서 4일 S&P는 "비상계엄령 사태가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오랫동안 한국의 정책 리스크가 안정성을 보였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세 번째 탄핵 정국이 반복되면서 국가 거버넌스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는 제기된다. 탄핵 정국이 안정화되기까지 정치적 불확실성이 기업의 투자를 지연시키고, 투자자들의 포지션과 소비심리에 부담을 주면서 자칫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S&P를 제외한 무디스와 피치는 이번 탄핵 정국을 두고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S&P도 비상계엄령 사태에 대해서만 전망을 냈을 뿐, 탄핵 정국에 대한 전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S&P는 전일 "한국의 비상계엄이 불과 몇 시간만에 해제됐지만, 한국 정부 신용도 기반에 대한 부담은 불가피"하다는 논평을 추가로 발표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내리막길을 그리면서 펀더멘탈(기초체력)이 약화하고 있는 점도 부정적이다. 3분기 한국 GDP 성장률은 0.1%를 기록하며 간신히 지난 2분기 수준의 역성장은 피했지만, 한국은행의 8월 전망치(0.5%)보다는 크게 뒤처진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날 오전에는 그동안 탄핵에 대해 입장을 아끼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마저 사실상 '탄핵 소추'에 찬성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계엄 사태는 본격 탄핵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