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이 선포되던 날은 평범한 저녁이었다. 타사 기자 친구와 내일 발제 뭐하지 고민을 하다가 집에 돌아온 길이었다. 저녁쯤부터 단톡방이 시끄러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뭔 발표를 한다더라. 예산안 관련이라던데 내용 알아? 하지만 정치부가 아니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전히 내일 발제 뭐하지 하며 ICT 관련 통계와 정책을 뒤적였다. 취재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으나 잘 알려주지 않는 업계 소식을 고민하며, '아, 내일 발제도 망했구나'하며 자책할 뿐이었다. 집에 오니 TV가 틀어져 있었다. 갑자기 계엄 선포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출입처에 즉각 연락을 돌렸다. 관 생활에 잔뼈가 굵은 취재원들도 처음 있는 일에 당황해했다. 곧이어 포고령 1호가 발표됐다. 3항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출입처인 방통위에 '유언비어 대응반'이 운영된단다. 계엄군이 언론, 방송사에도 올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모 방송사는 입구에 바리케이트를 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간의 괴로웠던 발제 고민은 배부르고 사치스러운 고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계엄은 해제됐고 기사 쓰기 노동은 계속됐다. 마치 공장 기계가 돌아가듯이. 자유롭게 전화를 돌리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썼다. 심지어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노트북 너머' 칼럼 꼭지를 채우고 있다. 감사하게도 나의 사치스러운 발제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과거 자유를 위해 피 흘린 선배들과 추운 날에도 국회 앞으로 나선 시민들에게 빚진 덕분이다.
사실 늘 자유롭게 쓰고 싶은 기사만 썼던 건 아니다. 노트북 너머 세상은 항상 욕심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원하는 대로만 기사를 쓰는 기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고소하겠다며 언중위를 가자던 취재원도 있었고, 욕설 메일을 받은 적도 있다. 여자 기자들에게는 더러운 말도 쉽게 쏟아진다. 하지만 잔소리와 압박이 있을지언정 총칼은 없었다. 군인도 본 적 없다. 나의 기사 작성은 지루한 근로 활동일 뿐, 목숨을 걸어야 할 투쟁이 아니다. 사치스러운 고민을 이어가며 마치 은행 이자처럼 빚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