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칼럼] 금리인하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착각의 경제학’

입력 2024-11-2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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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자유기업원 이사장

가격통제가 수요공급 조화 깨듯이
인위적 금리인하는 투자오판 불러
감세·규제완화로 성장 촉진이 正道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한국은행의 예상치에 한참 못 미친 전기 대비 0.1%였다. 정부가 전망한 올해 성장률 2.6%를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내년 경제성장률은 올해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다 보니 경제성장을 위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촉구하고, 심지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실기론을 제기하고 있는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많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결정하는 근원이므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작하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금리를 결정하는 근원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사람들의 시간선호다. 시간선호란 동일한 재화라면 먼 미래보다는 현재에 소비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동일한 재화라면 미래의 가치가 현재의 가치보다 더 커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미래의 소비를 위해 재화를 현재에 소비하지 않고 연기한다. 여기서 바로 이자가 발생한다. 즉 미래재화의 가치와 현재재화의 가치 간의 차이가 이자다.

그런데 시간선호는 사람마다 다르다. 시간선호가 상대적으로 높은(현재 소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선호가 상대적으로 낮은(미래 소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 있다. 시간선호가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은 미래 소비를 위해 저축(대부자금 공급)하고, 시간선호가 상대적으로 강한 사람은 현재 소비를 위해 차입(대부자금 수요)한다.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금리가 결정된다.

사람들의 시간선호가 변화해 저축이 증가하면 금리가 하락한다. 이러한 금리 하락에 대해 기업가는 소비자들이 현재에 소비하기보다는 미래에 더 소비하겠다는 신호를 받는다. 이에 기업가는 미래에 소비할 수 있는 재화를 더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자본재나 새로운 자본재에 투자를 늘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축과 투자 그리고 현재 재화와 미래 재화 간에 조화를 이루며, 미래에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가 증가해 후생이 증가하고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는 금리가 기업가와 소비자에게 주는 신호를 왜곡한다. 저렴하게 신용을 공급하는 중앙은행의 정책으로 인해 수익성이 없다고 평가되었을 투자가 갑자기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기업가들이 잘못된 투자 결정을 한다. 한편 낮아진 금리로 인해 사람들이 저축할 유인이 줄어 소비가 증가한다. 투자와 소비가 증가하며 경제가 호황을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호황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시간이 흘러 미래 시점에 가면 투자 증가로 재화의 생산이 증가하였지만, 저축은 늘지 않아 생산물에 대한 수요가 부족해 팔리지 않는 재화가 쌓인다. 게다가 금리 인하로 풀린 통화 공급 증가로 물가가 상승한다. 물가가 상승하면 중앙은행은 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한다. 생산된 재화가 팔리지 않고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면서 잘못된 투자를 하였던 기업들이 파산하며 불황이 찾아온다.

인위적인 금리 인하는 재화의 가격통제와 똑같다. 재화의 가격통제가 재화의 공급과 수요 간의 조화를 깨뜨려 시장의 교란을 초래하듯이 인위적인 금리 인하는 현재재화와 미래재화 간의 조화를 깨뜨려 일시적인 호황과 불황을 초래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1930년대 대공황이 모두 그래서 발생했다.

더욱이 지속적인 저금리정책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잘못된 투자를 유도해 계속 귀중한 자원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가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사실은 일본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은 지난 30여 년 동안 저금리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고 있다.

실제적인 저축 증대와 함께 기업과 기업가들이 더 많고 더 좋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 낼 때만이 경제가 계속 성장할 수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면 사람들의 저축이 늘어나게 하고, 기업과 기업가들이 역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등을 낮추고,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실제적인 소득이 늘어 저축이 증가하고 기업과 기업의 투자와 혁신 활동이 활발해져 경제가 계속 성장하게 된다. ‘트럼프 2기’가 몰고 올 소용돌이를 헤쳐 나갈 길도 여기에 있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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