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늑대소년' 자처하는 정부

입력 2009-07-0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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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와 금융당국 수장들이 앞 다투어 '주택대출 규제 강화'를 경고하면서 '늑대소년'을 자처하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3일 경제단체가 초청한 행사에서 "주택담보대출 동향 등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시장 불안이 우려되는 경우 대출기준을 강화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방안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최근 김종창 금융감독원장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를 우려하며 규제 강화 가능성을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이같은 정부 당국자들이 경고성 발언은 최근 강남 일대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주택가격이 다시 급등세를 연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를 적극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부당국의 이같은 사전경고는 당초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경우 정부의 규제에 민감해 쏠림현상이 매우 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잇따른 '구두경고'가 이어지자 규제 이전에 미리 대출을 받으려는 가수요가 몰리면서 은행과 고객 모두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같은 사전경고는 '정부가 조만간 규제를 강화할 예정이니 서둘러 대출을 받으라'는 메시지나 다름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특히 주택대출 규제는 정부가 규제를 검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쏠림현상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사전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난 참여정부시절에도 어설픈 구두 개입으로 부동산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킨 경험이 있다. 지난 2006년 당시 정부는 LTV와 DTI 등 대출 규제 골자로 한 11ㆍ15 부동산 대책을 선보였으나 효과가 미진하자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주택담보대출을 자제해 줄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주택대출이 11월에만 1조4000억원이나 급증하는 부작용을 겪어야만 했다.

따라서 지난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주택대출 규제에 나서더라도 우선 신중히 판단한 후 전격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만약 금융당국이 지금처럼 '늑대소년'을 자처할 경우 지난 정부의 실수를 거듭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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