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부 차장
국내 최고의 민간 재정연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살림연구소가 2022년 회계연도 결산을 분석해보니 당시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증액된 액수는 4조5000억 원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출신이 경제부총리로 오는 등 행정부보다 입법부인 국회의 힘이 세지다 보니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쪽지예산은 기재부로서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증액된 예산이 사후적으로 집행에 대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22회계연도 결산을 보면 국회에서 증액해놓고 정작 집행률이 0%인 사업이 16개에 달했다. 집행률이 저조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인 80% 이하 사업은 59개로 3807억 원 규모였다. 당황스러운 것은 집행률이 0%인 사업의 실태였다. 가로림만 해양정원조성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 통과를 전제로 36억 원이 증액됐는데 타당성 재조사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노선도 70억 원을 증액했는데 한국개발연구원(KDI) 민자적격성 검토, 실시협약 체결 이후 보상비 등 집행이 올해부터 이뤄지면서 전혀 집행되지 못했다. 이 예산이 더 시급한 곳에 쓰였다면 자원 배분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2024년 예산안의 국회 제출을 앞둔 시점에서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용으로 국회에서의 증액이 활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커 사전적으로 증액·신설 사업에 대한 검증을 통해 무분별한 지역구 챙기기 예산 행태에 대한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내년 예산안은 지출 증가율이 2.8%에 불과하다. 20년 내 역대 최저다. 금액으로는 18조2000억 원에 불과하다. 새로운 사업을 집어넣어야 하는 지역구 의원 입장에서는 국회로 넘어온 예산안을 어떻게 뒤흔들어서 자기 지역구 예산을 들이밀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로서도 국회에서 증액된 예산은 어쩔 수 없다고 하면 더는 욕을 먹지도 않는다.
벌써 내년 총선에 출마해 금배찌를 달고 싶어하는 기재부 출신 퇴직 고위공무원들이 많다는 소식이다. 가끔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보면 현직에 있을 때 예산을 배정해서 감사패를 받았다거나 자기 힘으로 어렵게 예산을 배정했다는 내용이 많다. 선의로 보면 꼭 필요한 사업에 예산을 배정한 것이지만 기자정신으로 조금 의심해본다면 나중을 대비해 보험을 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납세자의 돈으로 마련된 예산을 노리는 자들이 많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을 지금보다 더 꼼꼼히 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