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내년 예산안, 이제는 국회의 시간

입력 2023-09-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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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쪽지예산이라는 게 있다. 아니 있었다. 쪽지예산은 9월 1일 정부예산안이 제출된 이후 국회 예산안 심의 절차 중에 지역구 의원들이 민원성 쪽지예산을 넣는 것을 말한다. 상임위원회 심사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 조정 과정에서 또는 예산 소소위에서 등장한다. 그러나 있었다고 표현한 것은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에서 몇 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쪽지예산은 없다고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에서 쪽지예산이 없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이유는 예전처럼 말 그대로 쪽지로 들이미는 예산은 없어졌다는 것이다. 더 쉽게 얘기하면 기재부 사무관이 가진 예산안 엑셀 파일에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예산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얘기다. 음지에서 쪽지예산은 기재부 말대로 없어졌을지 몰라도 국회에서 증액되는 예산은 여전히 있다.

국내 최고의 민간 재정연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살림연구소가 2022년 회계연도 결산을 분석해보니 당시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증액된 액수는 4조5000억 원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출신이 경제부총리로 오는 등 행정부보다 입법부인 국회의 힘이 세지다 보니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쪽지예산은 기재부로서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증액된 예산이 사후적으로 집행에 대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22회계연도 결산을 보면 국회에서 증액해놓고 정작 집행률이 0%인 사업이 16개에 달했다. 집행률이 저조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인 80% 이하 사업은 59개로 3807억 원 규모였다. 당황스러운 것은 집행률이 0%인 사업의 실태였다. 가로림만 해양정원조성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 통과를 전제로 36억 원이 증액됐는데 타당성 재조사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노선도 70억 원을 증액했는데 한국개발연구원(KDI) 민자적격성 검토, 실시협약 체결 이후 보상비 등 집행이 올해부터 이뤄지면서 전혀 집행되지 못했다. 이 예산이 더 시급한 곳에 쓰였다면 자원 배분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2024년 예산안의 국회 제출을 앞둔 시점에서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용으로 국회에서의 증액이 활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커 사전적으로 증액·신설 사업에 대한 검증을 통해 무분별한 지역구 챙기기 예산 행태에 대한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내년 예산안은 지출 증가율이 2.8%에 불과하다. 20년 내 역대 최저다. 금액으로는 18조2000억 원에 불과하다. 새로운 사업을 집어넣어야 하는 지역구 의원 입장에서는 국회로 넘어온 예산안을 어떻게 뒤흔들어서 자기 지역구 예산을 들이밀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로서도 국회에서 증액된 예산은 어쩔 수 없다고 하면 더는 욕을 먹지도 않는다.

벌써 내년 총선에 출마해 금배찌를 달고 싶어하는 기재부 출신 퇴직 고위공무원들이 많다는 소식이다. 가끔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보면 현직에 있을 때 예산을 배정해서 감사패를 받았다거나 자기 힘으로 어렵게 예산을 배정했다는 내용이 많다. 선의로 보면 꼭 필요한 사업에 예산을 배정한 것이지만 기자정신으로 조금 의심해본다면 나중을 대비해 보험을 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납세자의 돈으로 마련된 예산을 노리는 자들이 많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을 지금보다 더 꼼꼼히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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