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마녀사냥과 결자해지

입력 2023-08-16 05: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구성헌 부동산부장

정부, ‘무량판’단지 아직도 파악중
안전점검 뒷전…정치공방만 난무
적당주의 깨고 개선안부터 찾아야

2023년 4월 29일 밤 11시 30분경. 인천 서구 원당동의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지하주차장 1, 2층의 지붕층이 연쇄적으로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건설업계에서는 주말 야간이라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수십 곳의 LH 아파트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고 사건이 지금처럼 일파만파 커지리라는 것을.

현재까지 밝혀진 LH 발주 무량판 구조 아파트는 전국 20개 단지에 달한다. 하지만 문제는 철근 누락 LH 아파트가 앞으로 더 추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LH는 전수조사를 했다지만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단지가 총 몇 개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현재 LH는 11개 단지에 대한 추가 점검을 진행 중이다.

유독 안전 문제에는 예민한 국민성이 발현되며 무량판 공법은 말 그대로 대역죄인이자 기피대상이 됐다. 믿었던 아파트가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드러나자 ‘순살XX’ ‘통뼈XX’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정부까지 나서 불안감을 조성하며 수십 년간 사용된 공법인 무량판 공법이 적용된 아파트는 마치 살지 못할 곳처럼 만들고 있다.

마녀사냥 식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호통을 치면서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을 부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태 해결에는 도움되지 못한다. 무량판은 해외에서도 적용된 지 100년 이상된 구조형식으로, 사용하느니 마느니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구조 안전에 대한 점검 시스템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다른 구조형식도 제대로 지어졌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등 떠밀리듯 급하게 하는 점검과 진단은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지 못할뿐더러 또 다른 관련 업체들의 배만 불려줄 뿐이다. 대통령의 ‘건설 카르텔 해체’에 대한 의지는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 굳이 전 정권 얘기를 꺼내 정치 공방화할 필요도 없다. 전 정부 탓으로 몰아 부실이 해결된다면 백번이라도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사건의 본질은 뒤로한 채 정치 싸움으로 끌고가봤자 사태 수습 시간만 길어질 뿐 그 속에서 고통받는 건 일반 국민이다.

다행인 것은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된 LH가 여느 때보다 빨리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의혹이 드러난 직후 LH는 서둘러 건설업계의 이권 카르텔과 잘못된 관행 근절을 위해 ‘반(反)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인력 구조조정을 포함해 권한과 조직을 축소하는 방안도 내놨다. 감리 선정 권한을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는 방안 역시 검토한다. 이한준 LH 사장은 “LH가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해 출범했지만 여전한 자리 나눠먹기와 칸막이 문화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뼈를 깎는 쇄신안을 예고했다. 임원들에게 일괄 사직서를 받고 자신의 거취 역시 국토교통부 등에 일임했다.

LH는 자산 200조 원에 공사 발주액이 연간 10조 원, 직원이 1만 명 가까이 이르는 거대 공기업 집단이다. 이런 조직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나선 것만으로도 큰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사고는 터졌고,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조직이 힘을 합쳐 사태 수습과 개선안을 내놓는 것이 지금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일각에서 거론하는 ‘조직 해체’ 등은 현실성 없는 일이다. 수십 만 서민들의 주거를 책임지는 기관을 말 몇 마디로 해체하고 만들 수 없다. 그동안의 토지·주택 개발 노하우와 임대주택 운영 노하우 등은 단기간에 만들고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철근이 빠진 아파트명 공개를 두고 논쟁을 벌일 게 아니라 불거진 문제를 개선할 방안을 찾는 게 시급하다. 망령처럼 떠도는 현장의 적당주의, 안전불감증, 전관을 통한 비리 등 수십 년간 이어진 악습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하기 때문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