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언시(담합행위 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는 기업들 사이에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 행위를 적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사업자 간 내부고발을 통한 배신행위이지만, 행정‧수사기관에는 범죄 혐의를 입증할 단초가 되는 셈이다.
최근 수사기관의 움직임은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대한(경성) 담합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선제적으로 수사에 나서며 기업 담합 범죄에 대한 엄벌 기조가 굳어지는 상황이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향후 입찰담합‧가격담합 등 경성 담합 사건에서 공정위와 협의를 통해 단독으로 수사해 기소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처리해나갈 전망이다. 세밀한 경제 분석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선 검찰이 주도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129조)은 공정위가 고발해야 검찰이 기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은 ‘공정위 전속고발권’에 따라 공정위가 먼저 사건을 조사하고 과징금을 부과한 뒤 검찰에 고발하는 식이었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2조3000억 원대 ‘가구업체 입찰담합 사건’이 그 사례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이정섭 부장검사)는 지난 2월 업계 1, 2위인 한샘과 현대리바트 등 유명 가구업체를 비롯해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공정위 고발이 이뤄지기 전 강제수사에 나섰고, 관계자들을 줄줄이 소환한 뒤 지난 4월 법인 8개와 임직원 14명을 재판에 넘겼다.
공정위가 행정조사에 시간을 끈 탓도 있지만, 담합 사건에서 ‘검찰의 선제수사’는 큰 의미가 있다. 애초 이 사건은 검찰과 공정위에 동시에 리니언시가 접수됐다. 검찰은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를 우선 적용해 수사에 착수했고, 수사 과정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도 포착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을 먼저 내사하고, 공정위에 고발 요청하는 방식이 정례화되고 있다”며 “강제수사 권한이 있는 검찰은 전에 비해 수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늘어났다. 검찰이 조금 더 주도권을 갖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사 진행 여부가 공정위에 달린 탓에 검찰이 적극적인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웠고, 범행 정보를 파악하더라도 공정위의 선(先)고발이 필요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전속고발권 폐지를 추진했다가 최종 무산됐다.
대검찰청은 2020년 12월 수사지침을 개정해 ‘형사 리니언시’를 도입했다. 공정거래법에 근거를 두고 리니언시를 운영하는 공정위와 달리 지침 개정만으로 도입해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검찰의 기업 수사에는 자연스럽게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향후 담합 사건을 적극적으로 수사하기 위해 리니언시 제도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에 접수된 리니언시 정보와 이 기업들의 수사 협조 정도에 따라 검찰의 처분 수위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기소 대상을 담합에 가담한 법인에서 총수와 임원까지 확대할 수도 있고, 리니언시 내용에 따라 기소가 면제되던 형사 리니언시 접수 1순위 기업까지 재판에 넘길 수도 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 속에 검찰의 역할은 커지는 모습이다.
이황 교수는 “검찰이 최근에 주로 관심 갖는 게 부당지원, 사익편취, 담합 등 사건”이라며 “기업들은 형사처벌이 관심사항이니까 현실적으로 검찰과 공정위에 같이 리니언시 접수를 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검찰은 광범위한 수사의 혐의를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