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고의가 왜 없나"…분통 터뜨린 '계곡사망' 군인 유족

입력 2023-05-1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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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 앞두고 조재윤 하사 사망사건 진상규명 기자회견
유족 "죽을 가능성 알면서도 수영 못하는 아들에 다이빙 강요"

▲군피해치유센터 ‘함께’와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가 17일 서울 서초동 법원 삼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이현 기자)

“선임이 시키는데 어떻게 안 뛸 수가 있나.”

고(故) 조재윤 하사의 어머니 조은경 씨는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울분을 토했다. 조 씨는 “재윤이는 수영을 전혀 못해서 평소 물가 근처에도 안 가던 아이”라며 “선임들이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어 다이빙하도록 시키고, 그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니면 무엇이겠나”라고 말했다.

군피해치유센터 ‘함께’와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는 17일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검찰과 서울고등법원은 선임부사관 위력에 의해 사망한 조재윤 하사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유족 측과 군사법원 등에 따르면 조 하사는 2021년 9월 자신의 스무 번째 생일날 선임들과 경기도 가평 부대 인근의 한 계곡을 찾았다. 당시 조 하사는 선임들의 제안을 몇 차례 거절했지만, A 중사와 B 하사는 “심심한데 같이가자”, “남자답게 놀자”며 조 하사를 데려갔다.

조 하사는 물에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두 선임도 조 하사가 물을 무서워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빠지면 구해주겠다”며 다이빙을 강요했다. 결국 조 하사는 3m가 넘는 깊은 수심의 계곡에 뛰어들었고, 살아 나오지 못했다.

군검찰은 지난해 2월 해당 사건을 ‘단순 사고사’로 결론지었다. 두 선임의 거듭된 제안이 강요나 위력으로 볼 수 없고, 조 하사가 물에 대한 두려움에도 다이빙에 도전해보려 했을 것이라는 사설 심리연구소의 추정 등이 근거였다.

하지만 조 하사 사망 4개월 전에도 같은 계곡에서 한 부사관이 물에 빠졌다가 구조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때도 다이빙을 시킨 건 A 중사였다. 군검찰은 앞선 결론을 뒤집고 지난해 10월 과실치사, 위력행사 가혹행위 혐의로 두 선임을 재판에 넘겼다.

국방부 제2지역군사법원 제3부(재판장 중령 김종일)는 지난 3월 23일 두 선임에 대해 각각 금고 8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구조를 위한 장비나 안전조치 등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채 다이빙하게 해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선임들이 조 하사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위력행사 가혹행위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유족은 분통을 터뜨리며 항소했다.

조은경 씨는 “본인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사고 4개월 전에도 수영 못하는 후임을 불러 다이빙시켰다”며 “명백히 아들을 데려가 계곡에서 죽인 데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하사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윈 원곡)는 “단순히 과실치사로 처벌될 게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마땅히 기소됐어야 할 사건”이라며 “이번 주 내 유족들이 군검찰에 '살인죄'로 공소장 변경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됨에 따라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다. 첫 공판기일은 오는 5월 3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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