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현 퍼셉션 전 대표
해가 7시간도 채 떠 있지 않은 추운 겨울에 북유럽까지 오게 된 까닭은 이러하다. 비행시간 10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 익숙함보다 낯선 경험, 외부와의 관계보다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상황,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실마리 찾기가 그 이유다. 꽤 오래전부터 디자인이나 라이프스타일에 관련해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도시들은 우리의 공부 대상이 되어왔다. 일단 떠나야겠다고 작정하고 나니 눈과 머리로만 알던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목적성이 분명한 출장도, 영감을 얻기 위한 인사이트 트립도, 가족 여행도 아니라서 그랬는지 ‘그래서 왜, 어디로, 다시 왜’를 분명히 하는 데 애를 먹었다. 눈에 밟히는 것들이 결정을 자꾸만 번복하게 했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는데 그 여정은 익숙하지만도 낯설지만도 않은 순간들의 합이다. 코로나 이후 외부와의 관계보다 자신에게 몰입하고 스스로 마음을 챙기는 현상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데, 이는 한때 지나가는 트렌드가 아니라 ‘인간 본성으로의 회귀’나 ‘인간다움의 존중’이다.
그러나 복잡한 일상은 짧은 호흡의 ‘단타력’을 단련시킬 뿐 온갖 번뇌를 비우고 스스로를 단정하게 하는 마음속 그림판의 ‘전체 지우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 경우 진짜 중요한 질문들은 비껴가게 된다. 몸의 디톡스만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에도 디톡스가 필요한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엉덩이의 힘’으로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을 제일 잘해 왔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잘 살아갈지 나에게 질문을 던지러 여행을 떠난다”라는 나의 말에, 주변 친구들은 “나도 열심히 하는 걸 제일 잘하는데 계속 똑같이는 안 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다. 모두 ‘열심병’을 지병으로 키워 온 이들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관점의 전환이 필요할 때 우리는 ‘낯설게 하기’의 유효성을 알고 있다. 삶의 여정 중 잠시 멈추고 깨끗한 도화지를 준비하는 데에도 ‘낯설게 하기’가 필요하다. 익숙함은 계속 덧칠만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끝난 줄 알았지만 완결은 없었고, 고장 난 것 같았던 시간을 극복하느라 무척 애썼던 2022년이었으므로 누구에게든 그 고단한 시간을 치유하겠다는 결심이 간절해 보인다.
며칠을 지내고 보니 ‘자연과 인간,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나의 밖과 안에 대한 균형 잡기’가 매일의 생각에 중심이 되었던 것 같다. 내내 흐리고 어두운 하늘은 생각의 깊이를 더했고, 해 지고 난 후가 더 중요한 것들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자로 짧게 머무른 며칠이었지만, 기후위기 대응이나 다양성 존중에 대한 실천이 실생활에 디테일하게 녹아 있어, 내가 살자고 시작한 여행이 자연스럽게 모두의 지속 가능한 삶을 그려보게 만들었다.
여행은 끝으로 갈수록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좀 다르다. 시간이 더 있다고 해서 ‘모두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만 알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 같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행 중에 찾은 단초들로 다시 맞이할 일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보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물론 소중하지만 온전히 나의 중심을 찾는 혼자의 여행은 필요하다. 많은 관광 거리를 경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소음을 끄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오롯이 여러분만의 여행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