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자녀 둔 성전환자…대법 “성별 변경 허가해야”

입력 2022-11-24 15:31수정 2022-11-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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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불허’ 판례, 전원합의체로 11년 만에 바꿔
“다만 혼인상태 있는 성전환자는 적용대상 아냐”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 공석에 두 달여 만에 열려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가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경우에 한해 ‘성별 변경’을 허가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2011년 9월 성별 정정을 불허한 기존 전원합의체 입장을 11년 만에 바꿨다.

▲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두 달여 만에 열렸다. 전원합의체는 지난 9월 초 김재형 전 대법관이 퇴임한 뒤 후임으로 지명된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두 달 넘게 열리지 않았다. 이날 전원합의체 선고는 한 자리가 빈 상태로 열렸다. (대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24일 A 씨가 “가족관계등록부 성별란에 ‘남’으로 기록된 것을 ‘여’로 정정하도록 허가해달라”며 제기한 등록부 정정 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법원에 따르면 남성으로 출생신고 된 A 씨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으로서 귀속감을 느끼다 2013년 정신과 의사에게서 ‘성 주체성 장애(성전환증)’란 진단을 받고 호르몬 치료를 받다가 2018년 외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A 씨는 2019년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모두 슬하에 미성년 자녀들이 있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A 씨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자녀들을 낳았으나 성전환 수술을 앞둔 2018년 배우자와 이혼했다.

재판부는 “신청인의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하도록 허용하면 미성년 자녀 입장에선 법률적 평가를 이유로 아버지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뒤바뀌는 상황을 일방적으로 감내해야 하고, 이로 인한 정신적 혼란과 충격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별 정정을 허용하면 가족관계 증명서의 ‘부(父)’란에 기재된 사람의 성별이 ‘여’로 표시되면서 동성혼의 외관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미성년 자녀는 취학 등을 위해 가족관계 증명서가 필요할 때마다 이 같은 증명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1‧2심 결정은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 정정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2011년 전원합의체 판례를 따른 것이다.

▲ 24일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재판장을 맡은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착석해 있다. (대법원)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단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을 이유로 성별 정정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면서 원심 결정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성전환자와 그의 미성년 자녀는 성별 정정 전후를 가리지 않고 개인적‧사회적‧법률적으로 친자 관계에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성별 정정 자체가 가족제도 내 성전환자의 부 또는 모로서 지위와 역할이나 미성년 자녀가 갖는 권리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훼손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다만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 중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경우에 한해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라며 “현재 혼인 상태에 있는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 대해서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의견이 엇갈리거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모여 다수결로 판결한다.

전원합의체는 지난 9월 초 김재형 전 대법관이 퇴임한 뒤 후임으로 지명된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두 달 넘게 열리지 않았다. 이날 전원합의체 선고는 한 자리가 빈 상태로 열렸다. 현행법상 전원합의체는 전체 대법관 3분의 2 이상이 있으면 소집할 수 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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