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탁사 방치한 국민연금...해외서도 ‘엇박자’ 석탄투자했다

입력 2022-10-2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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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외부 위탁운용사와 ‘엇박자’ 탈석탄 행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의 직접투자는 줄었지만 위탁사는 해외 석탄 투자 비중을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위탁사 모니터링을 묻는 국회 요구에도 관리 일지를 제출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이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위탁사를 방치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관련기사 : [단독] 국민연금, ‘석탄채권’ 던져도 위탁사가 샀다…‘엇박자 탈석탄’)

20일 본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실과 함께 ‘탈석탄 선언 이후 해외 채권 투자 현황(직접·위탁, 평가금액 기준)’을 분석한 결과, 국민연금은 탈석탄 선언 이후 해외 석탄 채권 투자를 1415억 원 늘린 것으로 집계됐다. 해외 석탄 채권 투자는 2020년 말 3108억 원에서 2021년 5월(탈석탄 선언) 3487억 원, 2022년 3월 4902억 원으로 늘어났다.

◇석탄 투자, 직접은 줄고 위탁은 늘었다...선언 ‘도루묵’
앞서 국민연금은 ‘해외 석탄 투자 현황’을 제출하라는 국회 요구에 “기준 마련 중”으로 제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에 본지는 2020년 말 국민연금이 작성한 ‘해외 석탄 투자현황’ 자료를 입수해 당시 ‘석탄 투자’로 분류됐던 해외 석탄채권 리스트(44개)를 추려 관련 투자 현황을 재요청해 석탄 투자 추세를 살펴봤다.

우선 직접 투자는 감소하는 추세다. 탈석탄 선언 후 직접 투자 규모는 999억 원에서 1024억 원으로 2.5%(약 25억 원)가 늘어났으나 투자 비중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연금이 직접 보유한 석탄 채권 투자 비중은 2020년 말 0.4%에서 2021년 5월 0.2%, 2022년 0.16%로 감소세다. 탈석탄 선언 이후 추가 매수한 채권 역시 3개에 그쳤다.

반면 위탁운용사는 해외 석탄 투자를 늘리고 있었다. 위탁사가 투자한 해외 석탄 채권은 2020년 말 2290억 원에서 2021년 5월 2488억 원, 2022년 3월 3878억 원으로 증가했다. 탈석탄 선언 이후에만 1391억 원이 늘었으며 위탁투자 비중도 0.49%에서 0.61%로 올랐다. 같은 기간 위탁사만 추가 매입하는 채권은 8개며 여기서만 701억 원이 늘었다.

이 중 국민연금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고려한 투자라고 별도 표시한 채권을 제외하고 보면, ‘엇박자’ 투자 행보는 더 뚜렷해진다. 해당 채권을 제외한 석탄투자 금액을 살펴보면, 국민연금은 직접 투자를 20억 원을 줄였지만, 위탁 투자는 763억 원이나 늘린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채권은 이탈리아 '에넬' 관련 채권으로 탈석탄 이후 117억 원에서 789억 원으로 투자 규모가 가장 많이 늘었다. 국민연금은 “2040년에는 판매하는 전력 100%를 화석 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려는 상황”이라고 투자 확대 배경을 알렸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국민연금도 기후 리스크를 인식하면서 직접 투자를 줄이지 않았나. 그러면 위탁운용사에 위험 신호를 보내고 석탄 투자를 늘리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했어야 했다”며 지적했다. 이어 “위탁사가 운영하는 돈 역시 국민들의 노후 자금이자 국민연금의 돈이다. 위탁사 자율성에만 맡길 게 아니라 ‘기후 리스크’를 고려한 투자를 하는지 사후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탁사, 책임투자 약속 안 지켜도 ‘방치’

탈석탄 선언에도 석탄 투자액이 증가한 것은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를 제한한다는 방침만 세우고 구체적인 탈석탄 투자 기준은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권과 주식이 대부분인 포트폴리오 특성상, 탈석탄을 PF 투자에만 적용한 것은 사실상 무의미한 조치인 셈이다. 위탁사가 아무런 제재 없이 석탄투자를 이어올 수 있던 배경이다.

위탁사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2019년 제시한 ‘위탁운용의 책임투자 내실화’ 원칙 이행에도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본지는 국회를 통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한 위탁운영사 관리 실태 점검 일지’ 요청했으나 국민연금은 질문과 관계없는 ‘운용사 선정 기준표’라는 엉뚱한 현황을 제출했다. 사실상 답변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올해 과제로 △국내외 주식, 채권 위탁운용사 선정 시 책임투자 요소 고려 △국내외 주식, 채권 위탁운용사 모니터링 등 강화 등을 올해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는 “국민연금이 위탁사의 석탄 투자를 모니터링하거나 관리하는 분위기는 아닌 거로 안다”고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전했다.

ESG 투자 방침도 위탁사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ESG 투자를 약속하면서 이른바 ‘ESG 통합전략’을 적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해당 기업이 미치는 ‘환경·사회·지배구조’ 영향력을 따져 투자 판단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ESG 통합전략’은 국민연금의 직접투자에만 작동될 뿐 위탁운용사는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은 '석탄 투자 기준 설정'부터 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5월 탈석탄 선언 이후 6개월이 지나서야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4월 종료)에 나섰다. 현재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을 50% 또는 30%인 안을 두고 고민하는 상태다. 연내 기금운영위원회를 열고 기준안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본지 보도와 국정감사 지적에 대해 "최종 연구용역 결과와 각계각층의 의견수렴을 거쳐 이를 바탕으로 조속한 시일 내 (석탄) 투자제한전략의 단계적 시행방안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알고 있다"며 "향후 단계적 시행방안이 마련되면 공단은 이를 성실히 이행해나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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