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민 부국장 겸 산업부장
아내의 부재는 컸다. 당장 방학인 아이들의 식사 문제와 살림을 혼자 맡아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2주 정도 지나자 일과 가사노동을 같이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막상 해보니 일과 가정의 양립은 혼자서 하기엔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꼈다. 직장이 멀다는 핑계로 평일 가사노동은 아내에게 맡겼는데 ‘그동안 어떻게 해왔을까’ 하는 경외감과 미안함이 들었다.
우리 사회 저출산 문제 해결 방법의 하나로 정부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기치를 내건다. 하지만 일과 가정의 병립은 개인이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가사·육아를 아내와 남편이 함께하지 않는 한 결코 일과 가정의 병립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젠 알게 됐다.
출퇴근 시 각각 2시간 가까이 걸려 일찍 퇴근해도 오후 8시 30분쯤에 집에 도착한다. 저녁 먹고 설거지하고, 다음 날 식사 거리를 챙기면 자정이 훌쩍 지나간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데 저녁 약속이 있는 날까지 겹치면 몸이 녹초가 되기 일쑤다. 한다고 하지만 아내가 없는 빈자리가 너무 커 집 안이 엉망이다. 그동안 아내에게만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스러움이 밀려왔다. 아내는 결코 슈퍼우먼이 아닌데 주말에 가사를 조금 분담한다는 이유로 나 몰라라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에서 한국 인구는 3800만 명으로 감소하고 인구 절반가량은 65세 이상 고령층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최근 영국 BBC방송,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도 한국의 저출산이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져 경제에 악영향을 미쳐 한국 잠재성장률을 낮추는 주요 요인이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올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나타나 올해 연간 기준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7명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 인구절벽은 생산가능 인구 감소로 이어져 노동력 부족과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지게 된다. 통계청은 경제 중추인 생산연령인구(15~64세) 구성비가 올해 71.0%에서 2070년 46.1%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할 사람이 줄어들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을 낼 납부자 수도 줄어들어 사회보장제도의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자칫 공동체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고령화 대책으로 출산 비용 지원, 양육수당, 보육제도 개선 등 복지 정책 중심에서 주거, 일자리, 정년연장 등 사회·경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균형발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유도, 적극적인 이민 사회 형성 등의 다양한 대책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남성의 의식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다.
가사와 육아는 남편이 돕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정부 정책이 일·가정 양립이 여성만의 문제로 보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런 생각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사회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무의미하다. 7월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2021년 전국보육실태조사-가구 조사’에서 자녀 출산과 양육을 위해 여성 48.8%, 남성 0.8%가 경력단절 경험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사례만 봐도 우리 사회가 가사·육아의 양성평등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절실히 알 수 있다.
남편들이여, 지금 당장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위해 앞치마를 두르자. 그래야 저출산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자 행복한 가정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