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거부하는 쪽의 말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살펴 실제 의사를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이혼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는데, 상대가 말로만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 씨가 B 씨를 상대로 낸 이혼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A 씨와 B 씨는 2010년 결혼한 뒤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 A 씨는 2016년 5월 집을 나가 B 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지만, A 씨에게 혼인관계 파탄에 대한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소송 이후로도 이들은 별거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A 씨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고, B 씨와 자녀가 사는 자신 명의의 아파트에 관한 담보대출금 채무를 갚았다.
법원에 따르면 B 씨는 자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연락하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요구하고, 일방적으로 아파트 잠금장치를 변경한 뒤 열쇠를 주지 않으면서 A 씨가 먼저 집으로 들어와야만 한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반면 A 씨는 관계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두 사람의 의견차이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A 씨는 2019년 다시 이혼소송을 냈고, B 씨는 소송 중에도 계속 이혼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1·2심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 씨가 지난 소송에서 패소한 뒤에도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혼인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점, B 씨가 이혼 의사가 없음을 밝히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를 인정하려면 혼인유지에 협조할 의무를 이행할 의사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B 씨가 표명하는 의사뿐 아니라 혼인생활 전 과정과 소송 진행 중 드러난 언행, 태도를 종합해 실제로 악화된 혼인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봐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과거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가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로 기각 판결이 확정됐더라도 때에 따라 이미 혼인관계가 와해됐고, 회복될 가능성이 없으며 협의이혼도 불가능해진 상태라면 유책성이 상당히 희석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선 소송 후 상대방도 이전 소송에서 문제가 됐던 유책성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고 전면적인 양보만을 요구하거나, 민·형사소송 등 혼인관계의 회복과 양립하기 어려운 사정이 남아있는데도 이를 정리하지 않은 채 장기간 별거가 굳어진 경우다.
다만 재판부는 “상대방 배우자가 경제적·사회적으로 매우 취약한 지위에 있어 보호의 필요성이 큰 경우 등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언행을 하더라도 이혼거절의사가 이혼 후 자신과 자녀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에 대한 우려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때에는 혼인계속의사가 없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지 판단할 때 고려할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의 판단 기준과 방법을 처음으로 구체화해 제시했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