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머니무브] 유럽 주식시장의 장기침체 원인은?

입력 2022-07-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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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출범 기대 컸지만…‘남유럽 재정위기’ 경제력 불균형에 생산성 향상도 정체

지난 기고에서 미국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 이후 인플레 압력이 둔화되며 주식 시장도 강세를 보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노령화는 경제 성장의 탄력을 둔화시키는 요인임에 분명하나, 인플레 압력이 약화하며 금리가 떨어지는 경우에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 제로 물가 및 제로금리 국면이 지속된 유럽 주식시장은 아직도 2008년의 고점을 뚫지 못하고 있다. 대체 왜 미국과 유럽 주식 시장은 전혀 다른 길을 갔을까? 그 원인을 밝혀보자.

유로 출범 후 성장률 평균 1.89% 불과…장기불황의 원인은?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증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든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저성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999년 유로(Euro)화 출범 이후 2021년까지 유럽 지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89%에 불과했고, 독일은 1.14%, 그리고 이탈리아는 0.11%에 그쳤다. 같은 기간 한국이 평균 3.84%, 그리고 세계경제가 4.93% 성장했음을 감안하면 유럽이 얼마나 부진했는지 알 수 있다.

유럽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든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1999년 유로화 출범에 있는 것 같다. 유로란 기존에 존재하던 각국 통화를 대체한 유럽 지역의 단일 통화를 뜻한다. 프랑스의 프랑, 독일의 마르크 등 각국이 가지고 있는 화폐를 없애고 이를 일정 비율에 따라 유로라는 새로운 화폐로 통합한 것이다. 각국이 화폐를 통합함으로써 미국에 못지않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경제권이 형성됨으로써, 유럽 경제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처럼 보였다.

각국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며 시장의 ‘파이’가 커진 데다, 유럽에서 가장 신용도가 좋은 독일과 비슷한 조건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1995년 3월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는 13.4%였던 반면, 독일은 7.3%에 불과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국가부채도 많고 인플레도 심한 나라이기에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지 않으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투자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1999년 초,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3.9%까지 떨어져 독일 금리(3.7%)와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 되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지급보증’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같은 유로화를 쓰는 나라들이니, 이탈리아 정부가 제때 이자를 갚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북유럽의 부자 나라들이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북유럽 강국들, 남유럽 재정위기 때 강력한 구조조정 요구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냉혹했다. 2010년을 전후해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을 때,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의 경제강국은 구제금융을 대가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그리스 국채 투자자들에게 50% 이상의 손실 분담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북유럽 국가의 냉혹한 결정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요 은행이 연쇄적인 부실 위험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독일의 모기지 및 중소기업 대출 전문기관인 IKB는 미국 부동산 시장에 대거 투자했다가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프랑스의 소시에떼제네랄 은행은 불법 선물거래로 사상 최악의 금융사고를 겪은 바 있다. 따라서 남유럽 국가의 위기를 지원할 여력도 없었고 또 의지도 부족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10월 8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그리스 방문을 하루 앞두고 아테네 그리스 의회 밖에서 노조원들이 메르켈 총리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유로화 출범은 하나의 시장 유럽에 대한 기대를 키웠으나 남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며 유럽 내 부국과 빈국의 경제적 불균형이라는 간극을 드러내기도 했다. AP연합뉴스

재정위기의 이유는? 경제체력과 동떨어진 저금리로 마음껏 대출받아

이 부분에서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남유럽 국가가 재정위기를 겪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은 독자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경제의 체력 수준과 동떨어진 금리로 마음껏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데 있다. 예를 들어 지난 10년 평균 명목 경제성장률이 6%인 남유럽의 A국이 독일 국채 금리 수준(3%)으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A국의 국채 발행 물량이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이르더라도, 매년 6% 성장하기에 명목 GDP 대비 이자지급 부담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A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계속 상향되며, A국은 낮은 금리를 무기로 과거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다양한 투자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그러나 A국이 기록한 연 6%대의 명목성장률이 경제성장이 아닌 높은 인플레 덕분이었다면? 독일의 물가상승률이 연 2%인데 A국 물가가 5%씩 오르면 관광객들이 A국의 비싼 물가에 놀라 소비를 꺼릴 것이고, 반대로 A국의 상인과 여행객들이 독일에 가서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해 국내에 파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결국 A국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물론 경제가 잘 돌아갈 때에는 경상적자는 큰 문제가 아니다. 채권 발행도 쉽고 A국에 여행 오는 관광객이 다시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세계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지며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불황으로 관광객이 끊기며 경상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자, 해외 투자자들부터 A국 국채를 매도하고 이게 다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며 심각한 불황이 찾아왔던 것이다.

남유럽국가의 물가는 왜 안정되지 않았을까?…기술혁신보다 부동산·복지에 퍼부어

이상의 이야기를 통해 2010년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다. 왜 남유럽 국가들은 만성적인 인플레를 경험했을까? 특히 이탈리아 등 남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노령화의 속도가 빠른 편인데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금리로 차입한 돈을 기술혁신에 투입하기보다 부동산 및 복지 예산으로 돌린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림1>의 세로축은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의 비중을 나타내며, 가로축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의 변화를 보여준다. 한눈에 알 수 있듯, 남유럽 국가의 R&D 투자는 유로화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매우 부진하다. 그리고 R&D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경쟁자들에게 뒤처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며, 공산품을 수입에 의지하니 다른 나라에 비해 물가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의 경쟁력이 날로 약화하는데 주식 가격도 오르기 어렵다. <그림2>의 세로축은 2005년 이후 주요 선진국 주가 상승률이며, 가로축은 총요소생산성 향상률을 나타낸다. 총요소생산성이란 기계장비 등에 대한 투자 없이 달성한 생산성의 향상을 뜻한다. 즉 총요소생산성이 높은 나라는 추가적인 비용 없이 더 저렴한 값으로 상품을 생산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총요소생산성의 향상이 더딘 나라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며 기업의 실적도 악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참고로 <그림2>의 왼쪽 아래에 위치한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인데, 2005년 이후 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지난 15년 동안 유럽 주식시장이 기나긴 침체를 겪은 것은 유로존의 출범이 불러온 각국의 경제력 불균형과 함께, 생산성의 향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 기고에서는 유럽의 고령화와 부동산 시장의 여건을 살펴볼 것을 약속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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