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 장기화 초래 과거 트라우마
엔저로 물가 상승 압력 커져...여론도 크게 악화
가계 부담 가중, 소비 침체 위험
20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달러·엔 환율이 140엔대까지 치솟고, 물가 상승률이 3%대로 오르게 되면 일본은행이 원치 않는 완화적인 통화정책 축소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일본은행은 17일 단기 금리를 마이너스(-) 0.1%, 장기 금리인 10년물 국채금리를 0% 수준으로 유도하는 현재의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목표치인 2%대에 진입했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 등 외부 요인에 따른 것으로 판단해 기존의 양적완화 노선을 유지한다는 것이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설명이었다. 일본은행은 신선식품을 제외한 4월 일본 물가상승률이 2.1%까지 올라갔지만, 내년에 다시 1.1%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닛케이는 일본은행이 약한 물가 전망을 ‘비둘기 모드’ 유지 근거로 들었지만, 그 이면에는 졸속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가 디플레이션 장기화를 초래했던 ‘트라우마’가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행은 하야미 마사루 전 총재 재임 시절인 1999년 2월 세계 최초로 제로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극약처방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반대에도 설비투자 회복세를 근거로 도입한 지 1년 6개월 만에 제로금리 정책을 해제했다.
결국 물가상승률이 다시 마이너스권에 진입하게 돼 이듬해인 2001년 3월 양적 완화 정책을 다시 도입했다. 2006년 3월 일본은행이 양적완화 정책을 해제했을 때도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0%대로 디플레이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며 ‘시기상조’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결과적으로 2년 뒤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일본은행은 다시 완화 기조로 되돌아가야 했다.
닛케이는 “일본은행의 완강한 정책 기조 고수에는 미국과 유럽의 금리 인상 기조가 과열된 세계 경제를 식히는 사이 저금리를 통해 자국 경기를 떠받쳐 결과적으로 ‘연착륙’을 달성한다는 의도가 담겼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에 나서면서 일본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최대 3~4%대로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인플레이션율을 2%대로 억제하려면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달러 강세로 인한 엔화 가치 하락 압력은 더 커지게 돼 에너지 등 수입물가 급등에 따른 가계 부담이 소비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내 전문가들은 현재 130엔대 중반대로 24년 만에 최고 수준인 달러·엔 환율이 140엔대 중반까지 오른다면 인플레이션율이 3% 정도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닛케이는 임금 상승은 이뤄지지 않고 물가만 올라 ‘고통의 금리 인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물가상승에 대한 여론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닛케이가 지난 17~1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의 지지율은 60%로 5월 조사 결과(66%)에서 6%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물가 상승에 대해 ‘허용할 수 없다’는 응답률이 64%로 ‘허용할 수 있다’는 응답률(29%)을 크게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