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과 장·차관 인사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뉴스에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백지신탁’입니다. 백지신탁이란 공직자가 재임 기간에 주식 따위의 재산을 대리인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외국에서는 블라인드 트러스트(Blind Trust)로도 불리죠. 이 제도는 미국에서 처음 실시됐는데요. 이후 일부 선진국에서도 도입하고 있습니다.
백지신탁은 고위관료나 국회의원 등 공직자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공적·사적 이해 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해 자기가 보유한 주식이나 채권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거나 법을 집행하지 못하게 막자는 취지인데요.
공직자는 백지신탁 중인 자산에 대해서 재임기간 동안 절대 간섭할 수 없고, 본인 소유의 주식이라 해도 마음대로 사고팔 수 없으며 주주로서의 권리 역시 행사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공직기간 내에 ‘백지’ 상태가 되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건 2005년 11월입니다.
주식백지신탁 대상자는 국회의원, 장관, 차관,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등이며 주식관련 공무원은 4급 이상 공직자가 해당됩니다.
주식백지신탁 하한선은 3000만 원인데요. 본인 뿐 아니라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합친 금액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 금액을 넘으면 매각 또는 백지신탁을 해야 하죠. 이는 두 달 내에 처분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일정 액수 이상의 주식을 보유했더라도 백지신탁심사위원회에서 직무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하거나 백지신탁을 거치면 공직 수행이 가능한데요.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지금까지 정치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안랩 지분 18.6%(186만 주)를 가진 최대주주인 안철수 위원장은 2013년과 2015년에도 백지신탁 논란이 일었는데요.
당시 관련이 없는 상임위로 배정돼 안랩 주식 보유가 직무 관련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죠.
최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백지신탁 처분에 불복했다가 논란을 빚은 보유 주식을 조만간 매각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면서 서울시장은 모든 업종의 주식을 다 팔라는 것이 관행이었고, 자신의 선택과는 별개로 현행 백지신탁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공직자 백지신탁은 ‘기형적’이란 평가도 나옵니다.
주식을 매각 또는 신탁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주식을 신탁하면 수탁기관을 통해 완전 매각이 이뤄지기 때문인데요.
여러 법적 논란 뿐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 유능한 인물의 공직 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죠.
공직자들의 직무수행에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면서도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균형 있게 담을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