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노조 사용자성 인정한 중노위 결정에 산업계 ‘초비상’

입력 2022-03-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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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위, 현대제철에 협력업체 노조와 교섭 나서라고 판정…재계 "줄소송ㆍ분쟁 촉발할 것"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고로. (사진제공=현대제철)

중앙노동위원회가 현대제철이 협력업체(비정규직)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판정했다. 기존 판례와 달리 원청을 하청업체 노조의 사용자로 인정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중노위가 CJ대한통운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산업계 전반에 경영 리스크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중노위는 현대제철 협력업체 소속 조합원으로 구성된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가 제기한 부당 노동행위 구제(단체교섭 상대 인정) 재심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노조는 △산업안전보건 △비정규직 차별 시정 △불법파견 해소 △자회사 전환 등 4개 의제에 대한 단체교섭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중노위는 교섭 분야를 산업안전보건으로 한정했다. 중노위는 “현대제철의 교섭 거부는 부당 노동행위다.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현대제철은 하청업체 노조의 교섭 요구에 “원청은 협력사의 사용자가 아니다”며 거부해왔는데, 중노위가 이 논리의 근거가 된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현대제철은 중노위 결정에 불복하고 행정 소송에 나설 방침이다. 현대제철 측은 “수주 뒤에 나오는 결정문을 보고 향후 대응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재계에서는 중노위의 이번 결정이 기존 판례와 노동법 체계를 뒤엎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기존 판례에 따르면 근로계약 관계를 맺은 당사자 간에만 단체교섭이 이뤄질 수 있었는데, 이번 결정으로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현대제철과 협력사 노조가 교섭에 나설 수 있어서다.

비록 중노위가 교섭 대상을 산업안전보건으로 한정했지만, 협력업체가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할 발판이 마련된 만큼 향후 임금과 근로조건 등으로 교섭 분야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 재계의 우려다. 정규직 전환이나 복지 강화 등을 포함해 함께 교섭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협력업체 노조가 원청과 교섭하게 되면 교섭 결렬 시 파업 등 합법적인 쟁의행위에도 나설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많은 산업에 원ㆍ하청으로 이뤄진 공생 구조가 지배적으로 존재한다. 협력업체 노조를 단체교섭 상대로 인정한 이번 판정이 원청을 상대로 한 협력업체 노조의 줄소송과 수많은 분쟁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대리점연합회와의 합의 이후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원청이 협력업체 노조와 직접 교섭해야 한다는 중노위의 판정은 CJ대한통운 사례에서도 이미 등장했다. 중노위는 지난해 6월 협력사 대리점 택배기사로 구성된 노조가 CJ대한통운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에서 “원청이 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 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며 CJ대한통운 측이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이 판정은 CJ대한통운 택배노조가 본사를 점거하는 등 65일간 불법 파업을 벌이는 명분을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중노위의 이번 판정은 법적 분쟁에 휘말릴 전망이다. 현대제철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지만,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수년이 걸려 현장의 혼란함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이번 중노위 결정을 앞세워 원청을 상대로 파업을 일삼는 사태가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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