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대만 증시에서 20조 원 이상 증발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만 타이베이에 본사를 둔 투자사 메가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진격한 이후 약 3주간 해외 투자자들은 대만 주식 약 4800억 대만달러(약 20조4000억 원)를 팔아치웠다. 이는 작년 한 해 해외 투자자들이 매도한 대만 주식 규모인 156억 달러(약 19조 원)를 넘어선다. 알렉스 황 애널리스트는 “지금까지 최대 규모 광폭 매도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규모가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만은 결코 우크라이나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전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맹비난하면서도 군사 개입을 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아니라는 명분과 함께 강대국 러시아와 직접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럴 만한 전략적 이익이 사실상 없다는 게 속내일 것이다.
그러나 대만은 얘기가 다르다.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최대 격전지로 인도태평양이 꼽힌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인도태평양을 미래 국제 질서가 결정될 곳이라고 했고, 미국 국방부도 인도태평양은 미국의 미래에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전략 보고서에 적시했다. 최대 화약고인 인도태평양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만은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 와중에 미국 국방부와 안보 관리들은 대만 타이페이로 날아가 지지 의사를 분명히 보여줬다.
중국이 이 부분을 계속해서 문제 삼는 이유는 단순히 러시아를 편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걸린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또 경고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향후 대만 침공을 위한 명분쌓기일 가능성도 있다. 리유청 중국 외무부 차관은 “우크라이나 위기는 아시아태평양 안보 상황을 검토하는 거울”이라며 미국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도태평양 전략을 겨냥했다.
지난달 조 바이든 행정부는 12쪽 분량의 ‘인도태평양의 약속’이란 문건을 내놨다. 문건에는 해외 동맹, 파트너와 협력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이룩하겠다는 뜻이 분명히 담겼다.
리유청 차관은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동맹을 형성하려는 시도는 나토의 동진 전략만큼 위험하다”며 “계속될 경우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나트남 국제관계대학원(RSIS) 리밍장 부교수는 “중국이 우크라이나 위기를 이용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맹렬히 공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수년 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사이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연구하고 서방의 제재 효과를 검토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자국의 논리를 관철하고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