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노매드 랜드”

입력 2022-02-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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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인간은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이 있다. 하루에 걷는 땅만큼의 토지를 받기로 한 농부는 욕심을 부리다가 원점으로 돌아오지 못해 결국 자기 키 넓이의 땅만 소유하고 죽는다는 얘기다. 당시 러시아 농노들의 땅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강했는지 엿볼 수도 있지만, 인간의 탐욕은 통제되지 않으면 끝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은 집이 땅을 대체하여 인간 욕망이 구현되는 실존의 대상이 되었다. 유례 없는 집값의 상승과 안정화 대책의 실패로 현 정권이 낙제점을 받고 있는 이 시점에 다시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과 사유를 요구하는 영화가 바로 ‘노매드랜드’이다.

‘노매드랜드’는 집 없이 유랑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노매드족’을 연민의 대상에 놓지 않고, 그들의 일상을 낭만화하지도 않는다. 이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10대 시절을 보내고 미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녀는 유랑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 넓디 넓은 미국이라는 땅 덩어리는 방랑을 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개인을 옭아 맨 여러 인연과 네트워크를 끊고 자발적 자유를 찾아 끝없이 유목하는 사람들을 특유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엮어냈다. 감독은 “나는 이 세계로 들어가서 진정한 유목민이라는 미국의 독특한 정체성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그 대가로 그녀는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은 직장과 남편을 잃자 상실감을 털기 위해 방랑 생활을 시작한다. 펀은 집이 없어서 밴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밴이 그의 집이기 때문에 그곳에 머무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그 이유로만 그가 노매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펀은 한곳에 정착하는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노매드랜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속물적 소유욕을 냉소하는 사회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노매드들이 선택한 대안적인 삶이 물리적인 집에 대한 집착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먼저 포착해낸다. 영화 제작자이자 주인공 펀을 직접 연기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제외하면 영화에 실제 노매드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이채롭다.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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