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경제 규모와 비교한 한국의 가계부채가 세계 37개 주요국 가운데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1년간 부채 증가속도는 가장 빨랐다. 이 같은 부채의 부실위험과 함께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가 15일 내놓은 세계부채보고서의 분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세계 37개국(유로존은 단일 통계) 중에서 한국이 104.2%로 최고였다. 조사 대상 가운데 한국만 유일하게 부채 규모가 GDP를 넘었다. 다음으로 홍콩(92.0%), 영국(89.4%), 미국(79.2%) 등이었다. 1년 전(98.2%)과 비교한 이 비율의 증가폭도 6.0%포인트(p)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홍콩(5.9%p), 태국(4.8%p), 러시아(2.9%p) 순이었다.
한국은행 통계에서 2분기말 가계신용잔액은 1805조9000억 원으로 1년 사이 168조6000억 원(10.3%) 불어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융완화가 이어졌고, 집값이 폭등하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주식 및 가상화폐 투자)가 급증한 데 기인한다.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가파르게 늘어난 빚이 자산거품을 초래한 상황에서 앞으로 이자부담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한은은 지난 8월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한 데 이어, 이달 한 차례 더 올릴 것이 유력하다. 가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만 연 5조8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요인이다.
정부는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전방위로 돈줄을 죄고 있다. 금리도 인상 기조가 뚜렷하다. 하지만 누적된 부채 해소과정에서 다중채무자와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중심으로 빚의 부실화 위험이 높아지고, 금융과 실물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갈수록 커진다. 연착륙의 마땅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보험연구원은 가계부채 문제에 재정과 금융당국 외에 국토교통부의 책임도 크다고 주장했다. ‘주요국 가계부채 조정사례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서다. 결론은 선진국에서도 주택가격 조정 없이 가계부채가 조정된 경우는 없었다며, 집값을 내리는 것이 가계부채 해결의 전제조건이라는 내용이다.
거듭된 부동산정책의 실패로 집값이 급등해 가계 빚을 심화시켰다는 얘기다. 그동안 공급은 외면하고 온갖 규제와 세금폭탄을 퍼부었지만 집값만 올린 정책에 대한 비판과 다름없다. 결국 가계부채도 부동산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없이 연착륙이 어려운 실정이다.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약화된 경제체질도 심각한 위기요인이다. 기업활력을 높여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가계여력을 키우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