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방 안에 화장실이 있으면 좋겠어요”…사라지는 ‘남대문 쪽방촌’ 가보니

입력 2021-10-2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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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골목길을 따라 쪽방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서울역 건너편 높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 경사진 길을 오르다 보면 낡은 주택 단지가 나온다. 차 한 대 들어설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50년이 훌쩍 넘은 19개 쪽방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른바 ‘남대문 쪽방촌’이다. 현재 230여 명의 주민이 이곳 한 평 남짓한 좁은 쪽방에 살고 있다.

25일 만난 남대문 쪽방촌 주민들은 여전히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50년간 거주한 A 씨(75)는 아직 오지 않은 겨울을 걱정하고 있었다. A 씨가 머무는 건물엔 샤워 시설이 없을뿐더러 공용 세면장에서조차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A 씨는 “다행히 인근 쪽방 상담소에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열어주는 공용 샤워장에서 샤워한다”며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른 거 없다. 정부가 개발해서 조금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전부다”고 말했다.

▲한 평 남짓한 쪽방에 마르지 않은 빨래가 가득 널려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A 씨 말처럼 이곳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장실, 샤워실, 세탁실 등 사람이 생활하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한 건물에선 화장실 하나를 두고 십여 명의 주민이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36년간 거주한 B 씨(70)는 집안 구석 구석마다 피어있는 곰팡이 때문에 걱정이다.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어 벽과 벽 사이에 빨랫줄을 이어 옷을 널다 보니 방 안에 습기가 빠지는 날이 없다.

B 씨는 “여름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방 안 습기 때문에 고역”이라며 “조그마한 베란다처럼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한 건물에 십여 명이 모여 살지만 화장실은 단 한 개 뿐이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이제는 사라지는 ‘남대문 쪽방촌’

▲쪽방 거주민 이주계획(안) (자료제공=서울시)

다행히도 이들의 주거환경은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최근 서울시가 남대문 쪽방촌 주민들의 이주 대책이 포함된 민간 재개발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21일 서울시는 제13차 도시계획위원회 수권소위원회에서 서울 중구 양동구역 제11·12지구 도시정비형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 결정(안)을 수정·가결했다. 이로써 이 구역에 수십 년간 자리 잡고 있던 남대문 쪽방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재개발 사업을 통해 이곳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580번지 일대는 2027년까지 지하 10층~지상 22층짜리 업무용 빌딩, 182가구가 지낼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주민의 자활과 취업 등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시설로 탈바꿈된다.

이번 개발사업에서 단연 눈에 띄는 점은 민간 재개발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거주민을 위한 이주 정책까지 함께 마련했다는 점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인근에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2024년까지 쪽방촌 주민들을 먼저 이주시킨 뒤 그다음 개발에 착수하는 방식이다. 민간 사업자에겐 용적률을 높여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서울시는 지난 6월 25일 주민공람을 진행하고, 7월 8일 주민 설명회를 여는 등 이번 재개발 방식에 관해 쪽방촌 주민들과 충분한 대화도 나눴다.

실제로 주민들은 이번 재개발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15년간 거주한 C 씨(73)는 “(재개발한다고) 나가라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빨리 허물고 빨리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57년간 거주한 D 씨(81)도 “저번 설명회에서 주민들을 절대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공공임대주택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쪽방촌 주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할 계획이다.

김용학 서울시 도시활성화과장은 “주민들이 원하는 주거공간을 만들기 위해 향후 대상자별로 수요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번 사업이 잘 추진돼서 그간 재개발 사업에서 문제가 됐던 주민 내쫒김 현상이 사라지는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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