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동의율 3분의 2 모여…“빠른 진행 기대”
서울 은평구 수색14구역에서 30년 넘게 거주한 A(75) 씨는 비가 오는 날이면 집 안에 양동이를 받쳐 두는 게 일상이다. 낡은 집 지붕 사이로 빗물이 들이치기 때문이다. 장마 때는 수도까지 터진다. A 씨는 “하루빨리 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일 기자가 방문한 은평구 수색동 310번지 일대 수색14구역의 첫인상은 문자 그대로 '달동네'였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가파른 경사를 따라 낡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낡은 건물 여기저기엔 ‘경축 수색14구역 공공주도형 재개발 선정’이라는 플래카드들이 걸려있었다. 수색14구역은 2·4공급 대책 중 하나인 도심 공공주택복합사업 후보지로 선정됐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한 간담회에서 수색14구역이 도심 공공주택복합사업 지구지정 조건인 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었다고 밝혔다. 3월 말 후보지로 선정된 지 불과 두 달 만이다. 현재 주민동의 요건을 채운 곳은 증산4구역과 수색14구역 두 곳뿐이다.
도심 공공주택복합사업은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 주거단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개발하는 사업을 말한다. 소유주의 10% 동의를 얻으면 예정지구로 선정되며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으면 사업지구로 지정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수색14구역 주민들은 일제히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이상규 수색14구역 공공재개발 추진위원회(추진위) 이사는 “후보지 선정 이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동의서를 제출했다”라며 “일주일 만에 동의율 40%를 넘었고 현재는 75%를 넘겼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수색14구역은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해 보였다. 수색14구역에 50년 넘게 살았다는 80대 B 씨는 “이곳 대부분 주택은 동네 앞쪽뿐만 아니라 뒤쪽도 대부분 지어진 지 30년 이상 된 것”이라며 “심지어 50년 넘은 집들도 있어 재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B 씨가 가리킨 건물 벽 곳곳엔 금 간 곳이 많았고, 심지어는 지붕 일부가 뜯어져 있는 곳도 있었다.
다만 도심 공공주택복합사업은 난항이 예상된다. LH 직원 땅 투기 사태 이후 정부 주도 사업에 대한 국민 불신이 여전하기 때문. 공공주택특별법 등 사업추진에 필요한 개정안도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근거법안 마련이 지연되면 그만큼 사업 일정도 늘어질 수밖에 없다.
속 타는 건 애꿎은 주민들뿐이다. C(50대) 씨는 “LH를 못 믿겠지만 그렇다고 대안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달동네에 살아야 한다. 결국, 정부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이사 역시 “국회가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 사업이 하루빨리 진행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사업추진 속도가 빠른 후보지를 특별관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국토부는 18일 주택공급 활성화 간담회를 열고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논의에선 공공 주도개발 후보지 가운데 주민 동의율을 확보한 사업지구에 대해선 LH 등의 공공 컨설팅을 조기 추진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추가 인센티브 제공도 논의됐다.
노 장관은 “관계부처와 유관기관 등과 적극적으로 협의하면서 구체적 참여 방안 마련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