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지방의 위기, 지방대의 위기

입력 2021-05-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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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학교 기업경영트랙 교수

올 초부터 교육계에서 가장 이슈가 된 의제 중 하나는 바로 ‘지방대 소멸론’이다. 지방대의 위기 및 생존을 다룬 기사는 지난 3개월간 6000건이 넘었다. 학령인구가 급속도로 줄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지방대가 상당수라는 뉴스는 역설적으로 수험생의 지방대 진학 기피를 초래해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지방대는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동원했다. 학교 간 통폐합을 추진하는 학교, 일부 학과를 폐지하고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신설하는 학교 등 변화의 몸부림은 여기저기서 들린다. 캠퍼스 이전을 고민하는 학교까지 등장했다는 뉴스는 현장에서 겪는 위기감이 실제로 상상 이상이라는 점을 실감케 한다.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작금의 지방대 경쟁력 위기는 어느 천재적인 최고경영자(CEO)가 와도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위기의 원인으로 학령인구 감소만을 탓하기도 어렵다. 모든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현실을 실감한 지방대 재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수도권 대학 편입이라는 또 다른 입시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경북대의 경우 지난 5년간 3000명에 육박하는 재학생이 자퇴한 것으로 알려져 전국의 지방대에 충격을 주었다. 매년 입학정원의 12%인 600명이 자퇴를 하고 있으며 이중 95%의 학생이 다른 학교 진학, 편입을 위해 떠났다.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에서도 한 해 500명이 자퇴한다고 하니 그 외 대학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올 초 내놓은 분석에 의하면 전북, 강원, 경북 등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층 비율은 무려 20%가 넘었으며, 이 외 전남, 울산, 대구, 광주도 20%에 육박하는 젊은이들이 수도권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좋은 대학과 일자리가 모두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에 지방은 도시 생존을 먼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국회 차원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방거점 국립대에 대한 재정 지원 확대와 연구 환경 조성 등이 거론되었지만 지방대를 이끄는 총장 및 교수들은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대학의 재정 및 연구 환경 조성도 필요하지만 좋은 일자리와 문화적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청년층을 유인할 방법은 없다.

위기는 사실 수십 년 지속되어 온 정부의 안일한 정책 탓이 크다. 학령인구 감소는 2010년부터 꾸준히 거론되어 왔지만 정작 일반대학의 숫자는 2010년 179개에서 2020년 191개로 오히려 12개가 더 늘었다. 1996년 정부가 대학 설립 자율화를 내세운 후 무분별하게 설립 허가를 해왔기에 수요 대비 초과공급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지방대를 중심으로 대학 정원을 축소하고 대학 평가에서 수도권 명문 대학과 동일선상에서 졸업생 취업률, 학생 재학률, 전임교원 확보율 등을 평가 기준으로 내세우니 지방대의 재정과 경쟁력이 쪼그라드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그 결과 최근엔 장학금 지급, 스마트폰 지급 등을 신입생에게 약속하는 지방대까지 등장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도시의 경쟁력이 약하면 해당 도시의 대학 경쟁력은 강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화적 인프라, 우수한 교육환경, 치안 및 안전, 좋은 일자리가 조성되어야 해당 도시와 대학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이 상식이다. 인프라와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지방대의 생존 방안은 한계가 있다.

국가균형발전의 관점에서 지방 도시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외면하고 서울 중심의 정책을 수십 년간 지속한 정부의 실책은 결국 지방대 위기론을 초래했다. 지방대 위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만큼 보다 긴 안목으로 정부가 대기업 계열사의 지방 이전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지방 도시에 대한 문화적 인프라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정부가 대한민국은 수도권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시그널을 전 국민에게 강하게 부여하면서 동시에 지방대에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한다면 그 자체로 모순이다. 교육기관의 경쟁력은 그 도시의 경쟁력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누가 와도 대학만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정부가 도시를 살려야 대학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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