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리서치 대표
“주식 가격이 오르면 앞으로 더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편, 반대로 주식가격이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비싸다고 생각하며 매도하는 사람도 나타나기에 주식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여기 등장하는 두 의견이 바로 주식시장에 존재하는 양대 세력, 모멘텀 투자자와 평균회귀 투자자에 해당된다. 모멘텀이란 가격이 어떤 방향을 정하면 계속 그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특성을 뜻하는데 ‘상한가 따라잡기’ 전략이 가장 대표적이다. 유명한 모멘텀 투자자 제시 리버모어는 “큰돈을 벌려면 개별적인 등락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추세를 판단해야 한다. 너무 올랐다는 이유로 못 살 것도 없고, 너무 내렸다는 이유로 못 팔 것도 없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제시 리버모어는 1877년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14세 때 보스턴의 한 증권회사 시세판 담당자로 일하며 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1929년 대공황 당시 주식 매도 공세를 주도하며 ‘월가의 큰 곰(Wall Street Big Bear)’라는 별명을 얻었고, 자산을 1억 달러 이상으로 불렸으니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성공한 개인투자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 취임 이후 시작된 강세장에 제대로 대응 못 하며 자산의 대부분을 잃었으며, 가정불화와 우울증으로 1940년 63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드라마틱한 제시 리버모어의 생애가 보여주듯, 모멘텀 전략은 매우 높은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지만 대신 그 예측이 빗나갔을 때의 위험도 크다. 모멘텀 전략을 추종하는 이들은 시장의 추세를 추종하며, 달리는 말에 올라타듯 상승 추세를 예측해 시장에 참여하는 경향을 띤다. 모멘텀 투자자들이 시장의 주류로 부각되었다는 것은 “주식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테니 지금 사두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는 이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멘텀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지만, 운용하는 자금의 규모는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관투자자들은 모멘텀보다는 평균회귀 투자가 우세하기 때문이다. 평균회귀란 강력한 상승 흐름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평균적인 수준으로 회귀하려는 특성을 의미한다. 평균회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경기다. 경기는 끝없이 좋아지지 않으며, 아무리 좋은 호경기도 결국은 공급과잉의 충격 속에 불황의 늪에 빠져든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시장이 대단히 유망하다면,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드는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면 이는 새로운 경쟁자들의 시장 진입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높은 수익성을 기록하는, 예를 들어 애플 같은 지배적인 기업은 새로운 경쟁자들에게 흔들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신규 시장 참여자들이 가격파괴 전략을 실행에 옮길 경우에는 산업 전체의 불황으로 연결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평균회귀의 전략을 따르는 사람들은 주식가격이 하락할 때 매수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예금 혹은 채권에 투자하는 것보다 주식의 기대수익이 더 높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기업의 실적 전망 대비 주가가 싸다고 생각할 때 매수한다. 따라서 평균회귀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시기는 약세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 하락의 속도보다 주가의 하락 폭이 더 크고, 기업의 자산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되었다고 판단할 때 주식을 매입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 평균회귀 전략 추종자들은 주식시장의 바닥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워런 버핏이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지분을 대량 매입한 것이다. 그는 주식뿐만 아니라 발행한 채권에 대해서도 투자를 늘린 바 있었는데 “주택경기가 십중팔구 1~2년 안에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이런 투자를 단행했다고 주주총회에서 술회한 바 있다.
이상과 같은 분석을 통해 주식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 혹은 투자의 철학이 다른 두 집단이 같은 주식에 대해 반대 포지션을 취하기 때문이었다. 평균 회귀전략을 추종하는 투자자들은 주식가격이 내재가치 혹은 역사적인 평균 밸류에이션 수준 아래로 내려갔다 싶을 때 매입함으로써 주식시장의 바닥을 형성하며, 반대로 모멘텀 투자자는 주식시장이 상승 추세로 바뀌었다 싶을 때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이 두 집단이 동일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때가 2020년 봄이었다. 당시 주식시장은 주가의 추가적인 하락을 겨냥한 공매도 공격과 레버리지 청산으로 대단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이때 대표적인 내재가치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골드만 삭스와 아메리칸 항공그룹 등을 대거 매도했다. 참고로 이 지분 변동은 1분기 말 기준으로 작성되었기에 주식시장이 가장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던 시점, 즉 주가의 가장 바닥에서 보유주식의 상당 부분을 정리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골드만삭스 주가는 2020년 3월 말 이후 122.7% 상승했고,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같은 기간 104.8% 올랐다.
워런 버핏은 2020년 3월, 왜 오랜 기간 투자하던 주식들을 팔아 치웠을까? 그의 속마음을 헤아릴 방법은 없지만, 아마도 ‘미래 실적 전망이 대단히 나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쇼크로 경제가 얼어붙고 수천만 명이 실업자로 전락하는 가운데, 전염병이 언제까지 맹위를 떨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은행이나 항공산업의 미래가 대단히 불투명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주가가 언젠가는 내재가치(혹은 역사적인 밸류에이션 수준)로 회귀할 것을 믿는 투자자들조차 매도에 동참하는 ‘만장일치’의 행동이 나타날 때가 종종 ‘전환점’을 형성한다. 왜냐하면 ‘팔 사람은 이미 다 팔아치운’ 때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주식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때는 양대 세력이 모두 주식을 매집할 때라고 할 수 있다. 경기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이 모든 세력에서 흘러 넘쳐, 모멘텀 투자자는 상승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며 주식을 매입하고 평균회귀 투자자는 미래 실적에 비해 현재 주가가 싸다고 판단하며 주식을 매입할 때 주식시장은 버블 국면에 진입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주식시장에 대해 끊임없이 비관론이 제기되며 ‘주식가격이 비싸다’는 평가가 높아질 때가 어쩌면 투자하기에 적합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부디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만장일치 없이 주식시장의 추가 상승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