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에 부는 MZ세대 노풍(勞風)…노사 리스크 '시험대'

입력 2021-03-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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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업계에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를 중심으로 한 노풍(勞風)이 거세다. SK하이닉스 성과급 사태로 촉발된 노사 문제가 다른 기업과 현안에까지 옮겨붙은 것이다.

주목할 점은 과거 기업 노사갈등이 강성 제조업 노조를 중심으로 했다면, 전자업계에선 이와는 다른 노선을 추구하는 사무직 노조가 앞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노사관계 리스크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주목된다.

LG전자 첫 사무직 노조 출범…위원장은 ‘4년 차 연구원’

(사진제공=LG그룹)

7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LG전자에선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사람 중심 노조’가 이달 초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고 공식출범했다. LG전자에서 사무직 직원만을 가입대상으로 한 노조가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교섭단위 분리를 통해 이달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서 단일지위로 사 측과 교섭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조 설립 논의는 지난달 LG전자에서도 성과급과 임금인상률에 대한 사무직 직원들의 불만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서 저년차 직원들을 사이로 노조 설립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졌고, 노조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노조 설립을 주도한 인물인 유준환(31) 위원장 역시 4년 차 연구원으로, 상대적으론 낮은 연차의 직원이다. 과거 노동운동 이력이나 활동 경력도 없다. 유 위원장은 “직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 노조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개별적으로 노무법인과 접촉하며 설립을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사람 중심 노조’에 정식 가입신청서를 낸 인원은 800명을 훌쩍 넘었는데, 이 중 저년차 직급에 해당하는 연구원과 선임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에는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LG전자 직원들의 교섭대표 역할을 맡아 왔다. 그러나 ‘사람 중심 노조’는 기존 노조가 제조업과 서비스직을 포괄하는 터라 사무직 직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임단협 과정 등에서 사 측 편의를 먼저 고려하는 ‘어용 노조’에 가까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올해 임단협에 참여하기 위해 노조 설립을 서둘렀다”라며 “성과급 문제가 트리거(방아쇠) 노릇을 했지만, 예전부터 사무직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가 없어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 '단체소송'ㆍ삼성 '공동교섭 요구'

올 초부터 성과급 사태로 내홍을 앓은 SK하이닉스에선 사무직 노조가 ‘단체소송’에 나섰다. 3년 전 도입한 인사 평가제도 ‘셀프디자인’과 관련한 소송이다.

셀프디자인은 기준급과 업적급으로 구성되는 사무직 임금 체계에서, 임원이 산하 업적급 적용률을 자의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이들은 이러한 제도가 근로자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사 측이 인지하면서도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과반 구성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점이 위법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말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근로기준법 위반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소송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 원칙 폐기'를 선언한 삼성그룹에서도 노조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등 삼성 그룹사 8개 노조는 지난달 연대체를 만들고 최초로 사 측에 공동 교섭을 요구한 상태다. 교섭안에는 성과급 제도 변경 등을 비롯해 임금 인상, 통상임금 정상화와 관련한 내용이 담겼다.

"노사 갈등 세대변화 일어나고 있어"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합리와 공정을 중요시하는 MZ세대가 사회 주축으로 자리 잡으며 ‘노사 갈등의 세대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노조는 집단행동을 하긴 하겠지만, 과거 세대와 같이 과격하거나 집단적인 위력을 행사하는 형태는 아닐 것"이라며 "성과급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SNS 소통을 통해 사회적으로 시선을 끌고, 압력을 넣으며 변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원하는 건 '정당한 기준'과 '개방적인 소통 창구'라는 점을 회사가 인식하고, 이를 반영해나가지 않는다면 노사 갈등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잠재적인 뇌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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