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아이들] 지원센터 휴관에 '꿈' 막혀…뒤에선 '이생망' 핀잔만

입력 2020-11-17 06:00수정 2020-11-1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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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는 최근 ‘학교 밖 청소년’들을 어렵게 만났다. 이들은 사연은 천차만별이다. 불우한 환경 탓도 있지만, 다른 꿈을 향해 자발적으로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도 있다.이런 그들에게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그들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발걸음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고이란·신태현 기자 photoeran@)
“학교 나가는 순간부터 네 인생 망친 거야.”

이투데이는 최근 4명의 ‘학교 밖 청소년’을 어렵게 만났다. 신분 노출을 꺼린 청소년과는 비대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 청소년의 마음에 하나같이 비수로 꽂힌 말은 ‘너 인생 망쳤다’였다.

학교 밖 청소년은 자퇴나 퇴학 등으로 초·중·고등학교를 중도에 관둔 만 9세~24세 청소년을 말한다. 학교 밖 청소년들의 사연은 천차만별이다. 불우한 환경 탓도 있지만, 다른 꿈을 향해 자발적으로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도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은 우리 사회가 포용해야 할 아이들이다. 여성가족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이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국내 학교 밖 청소년 24만 명 가운데 지원시설(꿈드림센터)을 이용하고 있는 아이들은 20%인 4만8000여 명에 불과하다.

교육·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청소년에게 특히 올해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학교 밖 센터’ 휴관하자 대입준비도 캄캄”

“학교를 나간다고 하자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이 엄청 말렸어요. ‘전교 꼴등을 해도 좋으니 제발 졸업장만 받자’라고요.”

특성화고에 다니던 이혜리(18·가명) 양은 고2 때 배정받은 전공이 원하던 ‘영상 부문’이 아닌 ‘금융 부문’이 되자 학교를 그만두기로 했다.

이 양은 꿈드림센터에서 진로를 찾아 나갔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서 지역 내 꿈드림센터가 5개월간 문을 닫자 상황이 달라졌다.

애초 이 양은 부모님에게 꿈드림센터에 다니며 검정고시와 대입을 준비할 테니 사교육비에서는 금전적인 지원을 안 해줘도 된다고 호언장담했었다.

이 양은 “저 같은 일부 학교 밖 아이들은 대입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예상치 않게 센터가 장기 휴관에 들어가면서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입의 벽은 더 높아졌다. 특히 수시 지원이 어려웠다. 최근 대학은 신입생 대부분을 수시로 뽑는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1학년도 선발 비율도 수시 77%, 정시 23%다. 그렇지만 학교생활기록부가 없는 학교 밖 청소년들은 응시가 어렵다.

이 양은 “꿈드림센터가 문을 닫으니 센터에서 하는 자격증·봉사활동 진로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이 막혔다”며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원격 수업을 하더라도 수행평가로 대체 한 내용을 기재할 수 있었는데 우리(학교 밖 청소년)는 자기소개서에 적어 낼 게 마땅히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예술 등 실기로 대학을 가려는 학교 밖 아이들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국제학교에 다니다 그만둔 김연지(16·가명) 양은 마포 꿈드림센터가 코로나19로 휴관하자 사설 소규모 미술학원에 다니며 대입 실기를 준비 중이다.

김 양은 “센터에서는 한 달에 미술 관련 수업을 5회 이상 들으면 25만 원가량을 지원해줬는데 사설 학원은 12회에 60만 원이 들어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학교 밖 시설의 원격 수업 대응도 미흡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센터 휴관 기간에 ‘온라인 수강권’을 받았지만 여러 명이 함께 쓰는 공용 아이디를 부여받고 공부를 이어갔다.

김 양은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줌’(Zoom)과 구글 클래스룸 등 플랫폼을 활용한 1대 1 비대면 원격 수업과 대면 수업을 혼합해서 받을 때 센터에서 청소년끼리 온라인 강의를 아이디 하나로 돌려 보는 방법으로 공부를 주로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사회적 편견

가출 청소년에게도 코로나19는 견디기 힘든 짐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자퇴한 최한나(18·가명) 양은 A 사회적기업이 지원하는 자립매장 B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헤어디자이너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최 양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얻지 못해 미용학원 비용을 댈 수 없었다. 그런 최 양의 꿈을 지켜준 것은 A 사회적기업이다.

사실 B 카페에서 일하기 전까지 학교 밖 청소년인 최 양에게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최 양은 “‘일 할 생각하지 말고 학교나 가라’는 말을 점장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다”면서 “코로나19 때문에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데 학교에 다니지 않는 가출 청소년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하니까 더욱 어려웠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자퇴생=문제아’라는 낙인이다.

고1 때 자퇴한 강욱재(18·가명) 군은 또래 친구들보다 1년 일찍 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학교 밖을 나와 검정고시와 대입 등을 준비하면서 ‘학교 밖 청소년은 문제아’라는 시선을 계속 느껴왔다고 했다.

강 군은 “코로나19로 모든 청소년이 보건, 교육 부문에서 위기상황을 겪고 있지만 학교 밖 청소년이 상대적으로 더 소외당하고 있다”며 “공교육에서 벗어나 자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편견과 더불어 코로나19로 배울 권리마저 보호받지 못해 꿈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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