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 대출 금지'가 갈라놓은 서울 주택시장 ‘두얼굴’

입력 2019-12-26 07:00수정 2019-12-2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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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ㆍ16 대책 후 강남 고가아파트 거래 '뚝'… 강북 중저가 단지 매수세ㆍ가격 '쑥'

“결국은 (집값이) 오르겠지만 당장은 정부가 너무 세게 나오니…. 그래도 아직 가격을 낮춘 급매물이 나온 경우는 없다.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심리가 강한 것 같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J공인 관계자)

“이쪽 동네는 물건이 나오면 잡아야 한다. 9억 원 아래 매물을 찾는 문의도 많고 집주인들도 가격을 올리고 있다.” (노원구 중계동 T공인 관계자)

세금ㆍ대출ㆍ청약 등을 총망라한 역대급 규제를 담은 ‘12ㆍ16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 주택시장 흐름이 지역별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시세 15억 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에 대한 대출이 전면 금지되면서 강남 등 초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의 거래시장은 꽁꽁 얼어붙은 반면, 15억 원 이하의 아파트가 다수인 강북지역 아파트 거래는 비교적 활발한 모습이다.

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신고시스템에 따르면 12ㆍ16 대책 발표 이후인 17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아파트 총 거래 건수는 170건이었으나, 이 중 15억 원 초과 건수는 단 6건에 불과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9억 원 이하 아파트가 대부분인 ‘노ㆍ도ㆍ강’(노원ㆍ도봉ㆍ강북구)에서는 40여 건 이상의 거래가 이뤄졌지만 서울 시내 전체 15억 원 초과 주택의 80%가 몰려있는 강남3구(강남ㆍ서초ㆍ송파구)에서 이뤄진 거래는 11건이었다.

다만 매매 거래 신고는 계약이 이뤄진 뒤 60일 이내에 하면 되기 때문에 이 기간 실제로 이뤄진 거래는 더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대책 발표 직전 일주일여간(12월 9~16일) 강남구 한 곳에서만 30건, 이 중 15억 원이 넘는 거래가 21건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12ㆍ16 대책의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출이 꽉 막힌 탓에 15억 원을 초과하는 매물 거래가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반면 15억 원 미만의 거래는 다소 활발해졌다. 가격도 오르는 양상이다.

성북구 길음역 금호어울림센터힐 전용 119㎡형은 종전 최고가 8억 원보다 2억 원 가까이 오른 9억8000만 원에 최근 거래됐다. 동대문구 답십리대우 전용 114㎡형도 19일 8억3000만 원에 팔리며 신고가를 다시 썼다.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산현대 전용 114㎡형 역시 대책 발표 직후 8억1000만 원에 거래되며 전고가를 넘어섰다.

6억 원 이하 아파트들도 가격 상승세가 뚜렷하다. 노원구 중계동 중계현대2차 전용 84㎡형은 23일 5억6800만 원에 매매되며 신고가를 기록했으며, 중계금호타운 전용 59㎡형도 직전 거래보다 6000만 원가량 오른 4억 원에 팔렸다.

인근 H공인 관계자는 “학군 때문에 원래 수요가 많은 곳이었는데 대책 발표 이후 오히려 관심이 더 많아졌다”며 “특히 대책 이후 집주인들이 집값 추가 상승 기대감에 호가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잠실동 일대 아파트 밀집지역 모습. 신태현 기자 holjjak@

강남지역과 함께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마ㆍ용ㆍ성’(마포ㆍ용산ㆍ성동구)에서도 15억 원 이하 아파트는 신고가 거래 사례가 적지 않다. 마포구 랜드마크인 마포 래미안푸르지오 1단지 전용 59㎡ 는 20일 이전 거래보다 1억 원가량 오른 12억7000만 원에 주인이 바뀌었다. 호가도 오름세다. 이 아파트는 현재 13억 원을 호가하고 있다.

성동구 서울숲더샵도 1억 원 상승한 11억8000만 원에 거래되며 최고가 기록을 새로 썼다.

재건축ㆍ재개발 단지 내 보류지 입찰에서도 이 같은 지역ㆍ가격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20일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옛 개포주공3단지) 보류지는 전용 76㎡ 1가구, 84㎡ 3가구, 106㎡ 1가구 등 총 5가구의 입찰을 실시했는데 단 1곳만 낙찰됐다.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도 싼 가격이었으나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이 막힌 상황이에서 27억~38억 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이 부담이 됐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반면 영등포구 신길뉴타운 ‘보라매 SK뷰’(신길5구역 재개발 단지)의 경우 조합이 보류지 물량으로 내놓은 10가구 중 8가구가 팔렸다. 하지만 전용 117㎡는 유찰됐다. 최저 입찰가격이 15억 원을 넘어 대출을 못받는 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교수는 “갑작스럽게 ‘초고강도’ 대출 규제책이 나오자 수요자들이 규제가 덜한 곳으로 몰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뿐 아니라 9억 원 이상 고가 아파트의 보유세(종부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이번 대책으로 2주택자는 물론이고 초고가 주택 소유자들의 세 부담도 커졌다”면서 “대출 규제 강화로 아파트 매입 자체도 어렵지만 매입 후 감당해야 할 세부담도 커 수요자와 보유자 모두 셈법이 복잡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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